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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공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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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는 일제로부터 우리의 자유를 찾기 위해 국내외에서 애국 활동을 하신 분들입니다.

어떠한 독립유공자 분들이 있는지 찾아보고, 그분들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배워보세요.
게시글 상세내용
성 명

안재홍

생몰년도 1891.12.30 ~ 1965. 3. 1
출신지 경기 평택
운동계열 국내항일
훈격(연도) 대통령장 (1989)
공적내용

  경기 평택(平澤) 사람이다. 1912년 일본 동경(東京)에 거주하던 한국인 유학생을 중심으로 조선유학생(朝鮮留學生) 학우회(學友會)를 조직하여 민족의식을 고취하는데 힘썼다. 1913년 1월 일본 조도전(早稻田) 대학에 재학중 중국 상해(上海)로 건너가 독립단체인 동제사(同濟社)에 가입하였다. 1919년 4월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의 지령에 따라 서울에서 청년들을 규합하여 청년외교단(靑年外交團)을 조직하고 총무를 담당하여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1920년 9월 2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1927년 1월 조선일보(朝鮮日報)의 주필로 재직하고 있을 때 신간회(新幹會)의 총무간사에 피임되어 강령을 작성하고 발표하여 창립총회를 개최하였고, 각 지방의 창립총회를 지원하기 위하여 강연 등을 실시하면서 언론을 통하여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1928년 12월 전남 광주(光州)에서 학생운동이 봉기되자 당시의 정치단체인 신간회와 협동하여 조선일보 부사장직에 있으면서 조선민중대회(朝鮮民衆大會)를 열고 일제의 민족차별적인 처우를 규탄하다가 체포되어 1930년 1월 1일 기소유예되었다. 1937년 5월 남경군관학교(南京軍官學校) 학생모집 운동으로 체포되어 경성지방법원에 회부되고 1938년 5월 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으로 징역 2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1939년 3월에는 흥업구락부(興業俱樂部) 조직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42년 12월 조선어학회(朝鮮語學會)에서 착수한 조선어사전편찬사업에 연관되어 함경남도 홍원(洪原) 경찰서에 수감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광복을 맞이하였다. 광복후 미군정청 군정장관, 민의원 의원 등으로 건국사업에 이바지하다가 6·25당시 북한에 납치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89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註 ·신분장지문조회회보서

    ·고등경찰요사 48·49면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국사편찬위원회) 8권 391·533·628·881면

    ·한국독립운동사(국사편찬위원회) 제3권 101&sim103면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341·342면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652면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3권 253&sim256·260·1015·1443·1444면

    ·동아일보(1927. 12. 12, 1928. 5. 23, 5. 26, 8. 3)

    ·조선일보(1937. 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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