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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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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의 독립운동가, 이석영 선생 선정

  • 등록일2020-07-31
  • 조회수1256
  • 담당부서공훈관리과 / 이영자 / 044-202-5780
첨부파일 200731 보도자료(8월의 독립운동가, 이석영 선생)최종.hwp바로보기
사진(이석영 선생).jpg바로보기
<p><strong>&nbsp;&nbsp;&nbsp;&nbsp;&nbsp;&nbsp;&nbsp; &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lsquo;20년 8월의 독립운동가, 이석영 선생 선정 </strong></p>
<p><strong><br></strong></p>
<p><strong>&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 이석영 선생은 독립운동을 위해 막대한 재산을 쾌척하여 경학사와 신흥무관학교 설립의 </strong></p>
<p><strong>&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주춧돌을 놓은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몸소 실천한 독립운동가로,&nbsp; <br>&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 이회영, 이시영 등 6형제와 함께 독립운동을 위해 서간도로 망명함</strong></p>
<p><strong>&nbsp;</strong></p>
<p>□ 국가보훈처(처장 박삼득)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이석영(1855~1934) 선생을 &rsquo;2020년 8월의 독립운동가&lsquo;로 선정하였다.</p>
<p><br>&nbsp; ○ 선생은 1855년 서울에서 출생하였으며, 1885년 과거에 급제해 벼슬길에 올랐다. </p>
<p><br>&nbsp; ○ 1894년 갑오개혁 이후 관직에서 물러나 재야에 머물다가 1910년 동생 이회영(&rsquo;62년 건국훈장 독립장), 이시영(&lsquo;49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등 6형제와 일가족 전체가 독립군 기지 개척 등 독립운동을 위해 전 재산을 처분하여 서간도로 망명하였다. </p>
<p><br>&nbsp; ○ 선생의 재정지원으로 1911년 서간도에 한인 자치기관인 경학사(耕學社)가 설립되었으며, 농업개발, 민족교육, 군사교육을 실시하여 구국인재를 양성, 무장항일 투쟁을 전개하고자 하였으나 1911년과 1912년 연이은 대흉년으로 심각한 재정난에 부딪히며 어려움을 겪었다.</p>
<p><br>&nbsp; ○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선생이 기부한 자금으로 신흥무관학교 전신인 신흥강습소가 설립되어 1911년 6월 서간도 삼원포 추가가(鄒家街)에서 개교식를 가졌다. </p>
<p><br>&nbsp; ○ 이곳에서 1920년까지 3,5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으며, 만주에서 조직된 독립군의 근간을 이루며 독립전쟁사에 찬란한 자취를 남겼다.</p>
<p><br>&nbsp; ○ 1912년 신흥강습소가 신흥학교로 개편되면서 주변의 권유로 선생이 교장을 맡았는데 선생이 독립운동에서 직함을 가진 것은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를 통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을 꺼리는 선생의 성품을 알 수 있다. </p>
<p><br>&nbsp; ○ 특히, 이러한 선생의 재정적 후원이 없었다면 경학사와 신흥무관학교의 탄생은 어려웠을 것이다.</p>
<p><br>&nbsp; ○ 전 재산을 독립운동에 바친 선생은 노후에 끼니조차 잇기 힘든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다 1934년 상하이 빈민가에서 생을 마쳤다. </p>
<p><br>&nbsp; ○ 독립운동은 집안의 희생과 몰락을 각오하고 나서야만 했던 가시밭길이었다. 그러나 그 길을 마다하지 않았던 선생과 6형제들의 삶과 자취는 독립운동의 정의와 양심이 무엇인가를 역사에 남긴 표상이었다. </p>
<p><br>□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