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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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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독립운동가 윤봉길 의사 공훈내용

  • 등록일2019-11-25
  • 조회수624
  • 담당부서공훈관리과 / 이영자
첨부파일 190224 윤봉길(수정).hwp
<!--StartFragment--> <p class="바탕글" style="line-height: 170%; font-family: 휴먼명조; font-size: 13pt; margin-top: 5px; -ms-layout-grid-mode: char;"><span style="font-family: 휴먼명조; font-size: 13pt;">국가보훈처(처장 박삼득)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윤봉길(1908.6.21~</span><span style="font-family: HCI Poppy; font-size: 13pt;"> 1932.12.19)</span><span style="font-family: HCI Poppy; font-size: 13pt;"> 의사를</span><span style="font-family: HCI Poppy; font-size: 13pt;"> 2019년 1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고 밝혔다.</span></p> <p class="바탕글" style="line-height: 170%; font-family: 휴먼명조; font-size: 13pt; margin-top: 5px; -ms-layout-grid-mode: char;"><span style="font-family: HCI Poppy; font-size: 13pt;"> </span><span style="font-family: 휴먼명조; font-size: 13pt;">윤봉길 의사는 1908년 6월 21일 충남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에서 태어났다</span><span style="font-family: HCI Poppy; font-size: 13pt;">. 의사는 야학당을 개설하고 『농민독본(農民讀本)』3권을 저술하여 한글교육 등 문맹퇴치와 민족의식 고취에 심혈을 기울였다. 1928년에는 부흥원(復興院)을, 1929년에는 월진회를 설립하여 농촌개혁을 실시하였다. </span></p> <p class="바탕글" style="line-height: 170%; font-family: 휴먼명조; font-size: 13pt; margin-top: 5px; -ms-layout-grid-mode: char;"><span style="font-family: HCI Poppy; font-size: 13pt;"> 의사는 독립운동을 위해 1930년 중국으로 망명하였으며 그 이후 중국 상해에서 백범 김구 선생을 만나 의열투쟁의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던 중 &ldquo;1932년 4월 29일 일왕(日王)의 생일인 천장절(天長節)을 일본군의 상해사변 전승 축하식과 </span><span style="font-family: 휴먼명조; font-size: 13pt;">합동으로</span><span style="font-family: HCI Poppy; font-size: 13pt;"> 상해 홍구공원(虹口公園)에서 거행할 예정이다&rdquo;라는 보도를 접하고</span><span style="font-family: HCI Poppy; font-size: 13pt;"> </span><span style="font-family: 휴먼명조; font-size: 13pt;">의거를 결심한다. 의거 3일전인 4월 26일 이 의거가 개인적 차원의 행동이 아니라</span><span style="font-family: HCI Poppy; font-size: 13pt;"> 한민족 전체의사의 대변이라는 점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백범 선생이 주도하던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에 가입하였다. </span></p> <p class="바탕글" style="line-height: 170%; font-family: 휴먼명조; font-size: 13pt; margin-top: 5px; -ms-layout-grid-mode: char;"><span style="font-family: HCI Poppy; font-size: 13pt;"> </span><span style="font-family: HCI Poppy; font-size: 13pt;">4월 29일 홍구공원에는 수많은 인파가 운집하였고 경계가 삼엄한 가운데</span><span style="font-family: HCI Poppy; font-size: 13pt;"> 단상 위에는 시라카와(白川) 대장과 해군 총사령관인 노무라(野村) 중장, 우에다</span><span style="font-family: HCI Poppy; font-size: 13pt;">(植田) </span><span style="font-family: 휴먼명조; font-size: 13pt;">중장, 주중공사 시게미쓰(重光), 일본거류민단장 </span><span style="font-family: 휴먼명조; font-size: 13pt;">가와바타</span><span style="font-family: HCI Poppy; font-size: 13pt;">(河端), 상해총영사</span><span style="font-family: HCI Poppy; font-size: 13pt;"> 무라이</span><span style="font-family: HCI Poppy; font-size: 13pt;">(</span><span style="font-family: 휴먼명조; font-size: 13pt;">村井) 등 침략의 원흉들이 도열해 있었다. 오전 11시 40분경 축하식 중 </span><span style="font-family: 휴먼명조; font-size: 13pt;">일본 </span><span style="font-family: 휴먼명조; font-size: 13pt;">국가가 거의 끝날 무렵, 의사는 수통형 폭탄을 단상위로 투척하였다. 이</span><span style="font-family: HCI Poppy; font-size: 13pt;"> 의거로</span><span style="font-family: HCI Poppy; font-size: 13pt;"> 시라카와 대장과 </span><span style="font-family: 휴먼명조; font-size: 13pt;">가와바타</span><span style="font-family: HCI Poppy; font-size: 13pt;"> 거류민단장은 사망하고 노무라 중장은 실명, 우에다 중장 등은 중상을 입었다.</span></p> <p class="바탕글" style="line-height: 170%; font-family: 휴먼명조; font-size: 13pt; margin-top: 5px; -ms-layout-grid-mode: char;"><span style="font-family: HCI Poppy; font-size: 13pt;"> </span><span style="font-family: 휴먼명조; font-size: 13pt;">이 의거는 </span><span style="font-family: HCI Poppy; font-size: 13pt;"> 임시정부에 대한 중국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이어져 대한민국임시정</span><span style="font-family: 휴먼명조; font-size: 13pt;">부가 다시 독립운동의 구심체 역할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span></p> <p class="바탕글" style="line-height: 170%; font-family: 휴먼명조; font-size: 13pt; margin-top: 5px; -ms-layout-grid-mode: char;"><span style="font-family: HCI Poppy; font-size: 13pt;"> 피체된 의사는 가혹한 고문 끝에 1932년 5월 25일 상해 파견 일본군법회의에서 </span><span style="font-family: 휴먼명조; font-size: 13pt;">사형을 받았으며, 이후 일본 오사카로 호송된 뒤 1932년 12월 19일</span><span style="font-family: HCI Poppy; font-size: 13pt;"> 가나자와</span><span style="font-family: HCI Poppy; font-size: 13pt;">(金澤) 육군형무소 공병 작업장에서 십자가 형틀에 매어 총살, 25세의 젊디젊은 나이로 순국하였다. 의사의 유해는 일제에 의해 버려졌고, 광복 후인 1946년에야 조국에 봉환, 효창공원에 안장되었다.</span></p> <p class="바탕글" style="font-family: 휴먼명조; font-size: 13pt; margin-top: 5px;"><span style="font-family: HCI Poppy; font-size: 13pt;"> 정부는 의사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span></p> <p><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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