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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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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독립운동가 김세환 선생 공훈 내용

  • 등록일2020-02-25
  • 조회수124
  • 담당부서공훈관리과 / 이영자
첨부파일 200213_김세환 약전(수정).hwp 사진 김세환.jpg
<!--StartFragment--> <p class="바탕글" style="line-height: 170%; font-family: 휴먼명조; font-size: 13pt; margin-top: 13px; -ms-layout-grid-mode: char;"><span style="font-family: 휴먼명조; font-size: 13pt;">선생은 1889년 11월 18일 경기도 수원군 수원면 남수리(</span><span style="font-family: 휴먼명조; font-size: 13pt;">현 수원시 팔달구 정조</span><span style="font-family: 휴먼명조; font-size: 13pt;">로</span><span style="font-family: HCI Poppy; font-size: 13pt;">)</span><span style="font-family: 휴먼명조; font-size: 13pt;">에서 태어났다. 청소년시기에 교회를 통해 선교활동과 함께 교육과 구국활동을</span><span style="font-family: HCI Poppy; font-size: 13pt;"> </span><span style="font-family: 휴먼명조; font-size: 13pt;">펼치는 인물들의 지도를 받으며 성장하였으며, 이들의 영향을 받아 교육가 및 독립운동가로서 꿈을 키워나갈 수 있었다.</span></p> <p class="바탕글" style="line-height: 170%; font-family: 휴먼명조; font-size: 13pt; margin-top: 13px; -ms-layout-grid-mode: char;"><span style="font-family: HCI Poppy; font-size: 13pt;"> </span><span style="font-family: 휴먼명조; font-size: 13pt;">선생은 서울과 일본 유학을 통해 근대 신지식을 습득하고 1909년 말경 귀국하였다.</span><span style="font-family: HCI Poppy; font-size: 13pt;"> </span><span style="font-family: 휴먼명조; font-size: 13pt;">이후 수원상업강습소(이하 강습소, 현 수원중고등학교)와 삼일여학교에서 민족</span><span style="font-family: 휴먼명조; font-size: 13pt;">교육을 실시하여 지역사회의 중추적 인물을 배출하고 민족의 진로를 모색하는데 앞장섰다. </span></p> <p class="바탕글" style="line-height: 170%; font-family: 휴먼명조; font-size: 13pt; margin-top: 13px; -ms-layout-grid-mode: char;"><span style="font-family: HCI Poppy; font-size: 13pt;"> </span><span style="font-family: 휴먼명조; font-size: 13pt;">선생은 미국 윌슨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 소식을 듣게 되었고, 이를 독립의 기회로</span><span style="font-family: HCI Poppy; font-size: 13pt;"> </span><span style="font-family: 휴먼명조; font-size: 13pt;">삼고자 3&middot;1운동에 참여하였다. 민족대표 48인의 한사람으로 &lsquo;순회위원&rsquo;이란 막중한</span><span style="font-family: HCI Poppy; font-size: 13pt;"> 임무를 띠고 활약하면서 수원지역의 3&middot;1운동을 기획, 지도하였다. </span></p> <p class="바탕글" style="line-height: 170%; font-family: 휴먼명조; font-size: 13pt; margin-top: 13px; -ms-layout-grid-mode: char;"><span style="font-family: HCI Poppy; font-size: 13pt;">&nbsp;그로 인해 1919년 3월 13일 체포되어&nbsp;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선생은 </span><span style="font-family: 휴먼명조; font-size: 13pt;">기개를 잃지 않았고, 법정에서는 조선독립의 당위성을 역설하였다. &ldquo;금후에도 </span><span style="font-family: 휴먼명조; font-size: 13pt;">독</span><span style="font-family: 휴먼명조; font-size: 13pt;">립</span><span style="font-family: 휴먼명조; font-size: 13pt;">운동을 계속할 것인가?&rdquo;라는 검사의 질문에 선생은 &ldquo;그렇다&rdquo;라고 간단명료하게</span><span style="font-family: HCI Poppy; font-size: 13pt;"> 대답하여 독립에 대한 결연한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이같은 선생의 자세는 </span><span style="font-family: 휴먼명조; font-size: 13pt;">재판 과정을 지켜보던 한국인들에게 큰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선생은 1920년</span><span style="font-family: HCI Poppy; font-size: 13pt;"> 10월 30일 경성지방복심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석방되었다.</span></p> <p class="바탕글" style="line-height: 170%; font-family: 휴먼명조; font-size: 13pt; margin-top: 13px; -ms-layout-grid-mode: char;"><span style="font-family: HCI Poppy; font-size: 13pt;"> 선생은 1920년대 초부터 추진되던 민립대학설립운동에서 수원지역을 대표하여 </span><span style="font-family: 휴먼명조; font-size: 13pt;">참여하였고 신간회 수원지회장에 선출되었다. 한편, 박선태&middot;김병호 등과 </span><span style="font-family: 휴먼명조; font-size: 13pt;">함께 수원체육회를 결성하여 수원지역의 민족운동을 조직적으로 강화하고자 하였다. </span></p> <p class="바탕글" style="line-height: 170%; font-family: 휴먼명조; font-size: 13pt; margin-top: 13px; -ms-layout-grid-mode: char;"><span style="font-family: HCI Poppy; font-size: 13pt;"> 1939년 폐교 직전의 위기에 빠진 삼일학교를 구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으며 1941년</span><span style="font-family: 휴먼명조; font-size: 13pt;">에는 수원상업학교를 설립하여 해방되기까지 교육에 힘썼다. 선생은 1945년 9</span><span style="font-family: 휴먼명조; font-size: 13pt;">월 26에 숨을 거두었으며, 개인묘지에 묻혔던 선생의 유해는 </span><span style="font-family: HCI Poppy; font-size: 13pt;">1968년 국립묘지 로 안장되었다. </span></p> <p class="바탕글" style="line-height: 170%; font-family: 바탕; font-size: 13pt; margin-top: 13px; -ms-layout-grid-mode: char;"><span style="font-family: 휴먼명조; font-size: 13pt;"><span style="font-family: 굴림;">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span></span><span style="font-family: 바탕; font-size: 13pt;">하였다.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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