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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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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독립운동가 손병희 선생 공훈내용
부서 공훈관리과

 선생은 1861년 충북 청원(청주)에서 출생하여 1882년 동학에 입문하였다. 1894년 호서지방 중심의 북접(北接) 사령관인 통령(統領)에 임명되어 남접의 전봉준과 함께 동학농민혁명의 기수로서 활약하기에 이른다. 1905년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하고 국권을 수호하고, 또 회복하기 위해 민족을 계몽하는 운동에 관심을 기울였다. 선생은 보성학교와 동덕여학교를 비롯한 수십개의 남녀학교를 인수 또는 신설하여 운영함으로써 민족의 동량을 육성하였다.

 

  선생은 1919년 1월 동경유학생의 2․8독립선언계획, 신한청년당 및 기독교계의 독립운동 계획을 듣고 독립선언 방식의 운동을 벌이기로 결정하였다.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시위를 전개함으로써 독립에 대한 열망을 알리고, 일본의 정부와 귀족원·중의원, 조선총독부 파리강화회의의 열국의 대표에게 한국의 독립에 대한 의견서와 청원서를 보내기로 하였다.


  선생은 권동진, 오세창, 최린과 3․1독립운동의 골간이 된 대중화, 일원화, 비폭력화의 3대원칙에 합의하고 각 교계의 중심인사들을 규합해 갔다. 이윽고 최남선이 기초한 독립선언서와 청원서 등이 완성되자 선생은 직접 이를 검토하였다. 그리고 천도교계와 기독교계의 검토가 이루어진 후, 천도교의 인쇄소인 보성사에서 독립선언서가 인쇄되었다. 1919년 2월 27일, 민족대표가 독립선언서에 날인하였고 2월 28일 자신의 집에 천도교, 기독교, 불교의 민족대표를 불러 협의하여 독립선언서의 발표 장소를 탑골공원에서 태화관으로 변경하였다.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거나 배포하면 소동이 일어날까 우려한 것이다.

 

   거사일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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