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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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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명가 이회영ㆍ이시영 선생 여섯 번째 형제 독립유공자 포상
작성자 : 이현주 작성일 : 조회 : 3,611
부서 공훈심사과
연락처 02-2020-5238

독립운동 명가 이회영ㆍ이시영 선생 여섯 번째 형제 독립유공자 포상
◈ 제93주년 3ㆍ1절 계기 순국선열ㆍ애국지사 72명 서훈 ◈

▣ 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오는 3월 1일(목) 제93주년 3ㆍ1절을 맞아 독립운동 명가 이회영ㆍ이시영 선생 여섯 번째 형제이면서 1925년 다물단 단원으로 의열투쟁에 참여한 이호영(李頀榮) 선생을 비롯하여 72명의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를 포상한다고 27일 밝혔다.

  ▶ 이번에 포상되는 독립유공자는 건국훈장 42명(애국장 25, 애족장 17), 건국포장 13명, 대통령표창 17명으로서 이 가운데 여성은 3명이며 생존자는 없다.

  ▶ 훈ㆍ포장과 대통령표창은 제93주년 3ㆍ1절 기념식장에서 유족에게 전수된다.

▣ 총 72명의 포상자 가운데 92%에 달하는 66명은 국가보훈처의 「전문사료발굴ㆍ분석단」이 행형기록 및 일제 정보문서, 신문보도 기사 등을 찾아 분석ㆍ검토하고, 현지조사를 통해 동일인 여부와 활동 전후의 행적을 확인하는 등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자료를 발굴하여 포상하게 되었다. 발굴 포상자 66명 가운데 8명은 판결문 등 입증자료를 통해 공적내용을 확인한 후 다시 읍ㆍ면ㆍ동사무소에서 제적등본, 가족관계등록부 등을 역 추적하여 유족을 찾아 포상함으로써 후손들의 자긍심을 고취하는 계기가 되었다.

▣ 이로써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받은 분은 대한민국장 30, 대통령장 93, 독립장 805, 애국장 3,822, 애족장 4,760, 건국포장 964, 대통령표창 2,372명 등 총 12,846명에 이른다.

▣ 앞으로도 국가보훈처는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와 국사편찬위원회, 국가기록원 등과 기존의 사료 수집 공조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고 해외 사료수집위원들의 협력 하에 국외 소장 자료를 지속적으로 발굴하는 한편, 지방자치단체와 문화원 등과도 긴밀히 협력하여 독립유공자 발굴 작업을 더욱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 금년도 제93주년 3ㆍ1절 포상자 중 주요 인물들의 독립운동 공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일제의 ‘남한대토벌작전’에 끝까지 맞서 싸우다 전사한 정군삼 선생
   전라북도 임실ㆍ진안ㆍ전주ㆍ남원 일대에서 이석용(李錫庸) 의진에 가담하여 활동하다 1908년 4월 21일 임실 운현(雲峴)에서 일본군의 기습을 받고 전사 순국한 정군삼(鄭君三)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된다. 자료에 따르면 의병장 이석용(1962, 독립장)은 운현에서 정군삼 등 부하들이 전사한 직후 “삼척단(三尺壇)을 설치하고 제물을 차려 피눈물로 축문을 지어 통곡”하였다고 한다. 선생에 대한 포상으로 1991년에 이미 애국장을 받은 윤정오(尹正五), 박운서(朴雲瑞), 김여집(金汝集), 서성일(徐聖一) 선생 등 운현 전투에서 전사한 사실이 확인된 분들은 모두 포상 되었다.
   
   ▶ 희생자 추모시위 주도로 만세시위의 불을 다시 지핀 전성순 선생
   1919년 4월 6일 충청남도 청양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태 90도를 받은 전성순(田聖淳) 선생께 대통령표창이 추서된다. 선생은 청양군 지곡리에서, 바로 전날 정산시장(定山市場)에서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했다가 일경의 총탄에 희생된 권흥규(權興圭)의 시신을 운반하던 주민들이 시위를 벌이자 여러 사람들에게 ‘독립만세’라고 쓴 깃발을 나누어주며 기세를 돋우다가 체포되었다.

   ▶ 여학생 신분으로 비밀결사에서 활동하다 체포되어 순국한 이선경 선생
   1920년 6월 경기도 수원에서 독립운동 비밀결사에서 활동하다 체포되어 순국한 이선경(李善卿) 선생께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된다. 선생은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비밀결사 ‘구국민단(救國民團)’의 구제부장으로 회원을 모집하고『대한민보(大韓民報)』등 독립운동 선전 간행물 배포를 협의하였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활동하기 위해 중국 상해 망명을 시도하다 체포되어 징역 1년을 받았다. 당초 선생은 활동 이후의 행적 등이 확인되지 않아 포상이 보류되었다가 최근 발굴한 제적부와 학적부를 통해 집행유예로 석방된 직후 순국한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포상을 하게 되었다.

   ▶ 가공할 무장투쟁으로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최치능 선생
   1922년 1월 중국 만주에서 대한군정서 대원으로 국경을 넘어 함경북도 온성군 신건원(新乾源)의 경찰관주재소를 공격하고 일제 순사를 처단하다 체포되어 무기징역을 받고 무려 16년이 넘게 옥고를 치른 최치능(崔峙能) 선생께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된다. 선생의 포상은 당시『동아일보』등에 독립운동 활동 내용이 보도되었을 뿐만 아니라『가출옥관계서류』(경성형무소 : 1939.12.11.)에서 옥고기간 및 출옥사실 등이 확인되어 이루어졌다.

   ▶ 만주와 북경에서 독립운동 진영의 통일에 헌신한 강우범 선생
   1919년 3ㆍ1운동 이후부터 1930년대 중반까지 여러 독립운동 단체의 지도자로서 독립운동 진영의 단합과 통일을 위해 노력한 강우범(姜禹範) 선생께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된다. 선생은 1913년 중국 연길현에서 조선간민회 의사원이 된 이래 1919년 3ㆍ1운동 당시 대한독립기성회 의사부원으로서 「조선독립선언서 포고문」을 발표하고 대한국민회 부회장으로 활동하였으며, 1920년 7월부터 대한국민회 제2중부지방회 회장으로 활약하였고 1923년 중국 상해에서 국민대표회의 대표자격 심사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26년 한국유일독립당 북경촉성회 결성에 참여하고 1933년에는 한ㆍ중 연대투쟁을 도모하고자 중한호조연합회에 참여하는 등 평생을 독립운동 진영의 통일에 노력하였다. 선생은 이름은 강구우(姜九禹)로도 알려져 있다.

   ▶ 독립운동 명가(名家)의 여섯 번째 독립유공자, 이호영 선생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함으로써 명실상부한 한국독립운동의 명가(名家)로 불리우는 이회영ㆍ이시영 선생 형제 중 여섯 번째의 독립유공자가 탄생되었다. 1918년 중국 통화현 합니하에서 신흥학교의 재무로 활동하고 1924년 북경에서 북경한교동지회를 조직하였으며, 1925년 다물단 단원으로 친일 조선인 처단의거에 참여하였고 1926년 중국 국민군으로부터 받은 다액의 자금과 폭탄을 다물단에 지원한 이호영(李頀榮) 선생께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다. 6형제 중 여섯째로 막내인 선생에 대한 포상으로, 이회영(李會榮, 1962 독립장), 이시영(李始榮, 1949 대한민국장), 이건영(李健榮, 1999 애족장), 이석영(李石榮, 1991 애국장)ㆍ이철영(李哲榮, 1991 애국장) 등 선생의 형제 모두가 독립유공자로 서훈되는 영예를 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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