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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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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4월의 독립운동가 '오광선·정현숙 선생' 부부 선정
작성자 : 이영자 작성일 : 조회 : 2,155
부서 공훈관리과
연락처 044-202-5780

                       ‘독립군 부부에서 광복군 가족으로 독립전쟁에 투신하다’
                    - ‘20년 4월의 독립운동가 '오광선·정현숙 선생' 부부 선정 -


□ 국가보훈처(처장 박삼득)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오광선(1896.5.14~1967.5.3)․

    정현숙(1900.3.13~1992.8.1) 부부를 2020년 4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고 밝혔다.


□ 먼저, 오광선 선생은 1896년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나 1913년 삼악학교를 졸업한 후

    이웃 마을 출신 정현숙(이명 정정산) 여사와 결혼했다.


 ○ 독립운동에 큰 뜻을 품은 선생은 1914년 서울로 올라가 종로에 있는 상동(尙洞)청년학원에

     입학하였으나, 총독부의 지속적인 탄압과 재정난으로 1915년 문을 닫게 되자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건너갔다.


 ○ 1918년 신흥무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동흥(東興)학교 군사교관과 체육교사로

     재직한 후 신흥무관학교 교관으로서 독립군 양성에 헌신하였다.


 ○ 1920년 12월 대한독립군단(총재 서일, 부총재 홍범도․김좌진․조성환, 부대원 약 3천 5백여 명)

     중대장에 임명되었으며, 1930년 7월 이청천과 홍진 등이 중국 위하현에 결성한 한국독립당의

     의용군 중대장으로 활동하였고, 1934년 2월에는 중국 육군군관학교 낙양분교 교관으로서

     군관 양성 활동에 매진하였다.


 ○ 이후 김구 선생의 지시로 1936년 북경으로 파견되어 첩보활동을 벌이던 중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신의주 형무소에서 2년간 옥고를 치렀다.


 ○ 1945년 11월 귀국하여 ‘대한국군준비위원회’, ‘광복청년회’, ‘대동청년단’에 참여하였으며,

     1948년 12월 육사 8기로 입교하여 이듬해 육군대령으로 임관하였고 전주지구위수사령관을 지낸 후

     준장으로 예편하였다.


□ 또한 정현숙 여사는 1919년 남편을 따라 만주로 망명하여 화전을 일구며, 남의 집 일을 해주고

    받은 품삯으로 생활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독립군의 뒷바라지에 헌신하여 ‘만주의 어머니’로 불리었다. 


 ○ 1941년 한국혁명여성동맹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44년에는 한국독립당 당원으로 임정 활동에

     참여하다가 해방을 맞았다.


 ○ 부부의 두 딸 오희영, 오희옥 선생(생존 애국지사) 역시 1939년 2월 조직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가담하여 선전활동에 참여한 것은 물론, 광복군에 입대해 초모(招募)공작 등에 활약하였으며 사위

     (오희영의 남편 신송식)까지 독립운동에 투신한 독립운동가 가문이다.


□ 정부에서는 두 분의 공훈을 기리어 오광선 선생에게는 1962년 독립장을 수여하였고, 정현숙 선생에게는

   1995년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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