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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길 형 편히 잠드소서 / 권익부

외길 형 편히 잠드소서

 

 

권 익 부

안동사범 동기

 

여기 일곱 노병은 베레모 위의 거수경례로 먼저 간 전우의 명복을 빌고 있소. 엄숙하고 슬픈 표정으로 먼저 세상을 하직한 전우의 명복을 비는 마지막 작별의 경례외다. 이 분들은 6‧25전쟁에 참전했던 전우들이고, 내 옆에는 외길과 각별했던 수명 군이 나란히 서서 땅 속에 안장되는 외길의 마지막을 바라보니, 내 두 눈에는 눈물이 흐르오. 한쪽은 외길과의 좋은 추억이 되살아나기 때문이오, 다른 쪽은 더 자주 만나서 더 잘 해주지 못한 후회와 슬픔 때문이외다.

외길은 평생 자기가 하는 일에 몰두하고 즐거워하며 의미를 찾고, 주위를 행복하게 해 주는 일만 하고 살았으니, 분명 천국에 갔을 것임은 의심치 않지만, 그럼에도 자꾸만 복받쳐 흐르는 양 갈래 눈물 속에는 외길의 음성이 젖어 있소. 내 귀에 들리는 소리는, “나 하고 자넨 남과 다른 특별한 인연이야.”라고. 그 인연은 잠깐 스치는 것이 아니고 좀 긴 인연이라. 회상 속으로 거슬러 가보면 외길과의 만남은 순수의 만남이었소. 어려서 가졌던 순진한 마음은 성인이 되면서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알아 가는 과정에서 때 묻게 마련이니, 우리가 만난 시간들은 그야말로 순수의 시간이었다 할 수 있겠소.

누구에게나 순수의 시간이 있지만 얼마나 오래가고, 또 얼마나 농도가 짙은가는 경우에 따라 다른 것이다. 외길 형은 실은 우리의 선배 형이었지, 소년병으로 6.25 전쟁에 참전한 후 안동사범 병중에 몇 년 늦게 재입학함으로 중학과 사범본과 동기생이 되었고, 이 때 우리는 서로가 많이 교감했다고 생각하오. 내게는 보이지 않던 길을 늘 알게 해 주는 사이가 되었던 일들이 세월이 한 해, 두 해 더해 갈수록 기억이 되살아나는 걸 보면, 이 시기가 순수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 후 나는 과학도로 대학에 진학하고 외길 형은 나보다는 몇 년 더 학교에 남아있어 후학들에게 훌륭한 교육자로서 남다른 재능을 발휘하였고, 최선을 다하는 최고의 선생님이 되었지. 이 때 평교사로서 박정희대통령 표창을 수상하였으니 얼마나 영광되고 자랑스런 선생님이었나. 그러나 외길 형이 가진 다재다능의 끼는 형을 못 견디게 들쑤셔서 교직을 떠나게 만들었고, 고향을 떠나게 되고 이때부터 새롭고 힘든 길로 들어선 것이었지. 이 길은 아무나 할 수 없는 무림의 고수처럼 인생에서 고수로의 길을 택해서 강호를 떠돌다가 드디어 경기도 포천 땅, 청계 산하 청계 저수지 상류에 받침대를 꼽고 준비 작업으로 좋아하던 낚싯대를 펴서 터전을 잡았고 이때부터 그 외 뛰어난 다재다능(서예, 회화, 악기연주, 창, 가요, 바둑 등)을 펼쳤다.

보통 사람은 한 가지도 제대로 못할 것을 이 모두를 욕심내어 함께 끌고 가는 고수의 길로 들어섰으니, 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육십이 다 되어서 포천에 확실하게 뿌리를 내렸고, 수년 전부터 한국예총 포천지부장으로서 포천의 모든 예술인과 문인들을 대표하는 지도자로서 문화 예술 분야에 많은 활동과 업적을 쌓았다. 포천에 안주할 초창기에 이조 초기 한석봉과 동시대 명필가였던 양사언에 심취하여 포천 땅에 인간의 부단한 노력을 요구하는 시조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시조비를 건립하는데 형이 명필로 글을 쓰고 건립하였으며 2005년도에는 한국예총이 선정하는 최고예술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리고 매년 성대히 개최하던 정기적 많은 문화행사를 누가 하라고 버려둔 채 이렇게 황급히 가시니, 오늘 이 순간이 형과의 마지막 작별을 하라는 안장식전에 서 있다는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습니다.

인명은 재천이라지만 이것이 하늘의 장난이라면 심한 장난이오, 하늘의 심술이라면 너무 심한 심술입니다. 불과 수주 전 우리 집 혼사에 오셨을 때도 멀쩡했었는데 그 때가 마지막 대면이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외길 형, 무명 시인이 지은 이런 구절이 생각나오.

 

“어두워 한 가지에 같이 자던 새 / 날 새면 서로 각각 날아가니

보아라 인생도 이와 같거늘 / 무슨 일로 눈물 흘려 옷을 적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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