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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참전용사들의 오늘 - 높고 차가운 사회의 벽

일도 갈 곳도 없어… 공원 찾거나 TV 앞에서 쓸쓸한 노후
상이용사 신청 퇴짜 일쑤, 일자리 찾는 것도 힘들어…
"장애인은 버스라도 무료 참전유공자엔 혜택 없어"

6·25전쟁 때 적 포탄 파편에 오른쪽 눈을 맞은 송재수(82)씨는 시각장애 1급 장애인이다. 1977년 오른쪽 눈 시력을 완전히 잃었고, 5년 전엔 왼쪽 눈도 실명했다. 부상당한 당시 눈과 머리, 허리에 파편을 맞은 그는 1주일 동안 의식불명 상태였고, 이후 몇 달간 대구 육군병원과 야전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상이군인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송씨는 2001년 진주보훈청에 상이 등급 신청을 했지만 기각됐다. '육군병원에 입원한 기록은 있으나 자세한 진료 기록이 없다'는 이유였다. 송씨는 "죽기 전에 국가유공자가 돼서 국립묘지에 가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지난 4월 송씨 아들 영호씨는 아버지 소원을 이뤄주기 위해 다시 상이 등급 신청을 했다. 송씨가 전쟁 때 부상을 입었다는 마을 주민 3명의 증언을 첨부했다. 하지만 받아들여질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종묘공원에서 6·25 참전유공자들이 장기를 두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참전유공자들은 생활고도 힘들지만 노후 시간을 선용하는 프로그램도 없어 이중삼중 고통을 받고 있다. /오진규 인턴기자 jinkyu@chosun.com

60년 전 참전유공자들은 참혹한 전쟁의 포화를 이겨냈다. 그들은 살아 돌아왔지만, 그들을 맞은 사회는 삭막했고 험난했다. 그들은 못 배우고 가난했기에 오히려 사회로부터 따돌림을 받아야 했다. 그들은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지만, 상이를 어떻게 인정받는지도 몰랐다. 수십 년 지난 지금에도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그들은 높고 차가운 사회의 벽을 여전히 느끼고 있다.

1952년 강원도 금성 전투에서 화랑무공훈장을 받은 김상업(81)씨는 10년 동안 정부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다 자포자기에 빠졌다. 왼팔에 파편상을 입은 그는 요즘도 궂은 날만 되면 팔이 시큰거리고 아프다고 했다. 그는 육군본부가 발부한 상이 확인증도 갖고 있지만 보훈청은 "병원 진단서를 가져오라"고 했고, 병원은 "언제 어디서 다친 건지 알 수 없다"고 했다. 김씨는 "전쟁에서 다친 사람에 대한 특별대책 같은 건 왜 없느냐"고 말했다.

지긋지긋한 생활고를 벗기 위해 일자리를 찾는 일도 힘들다. 평균 연령 80세를 넘은 참전유공자들은 고령과 건강 때문에 구직 대상에서 제외되기 일쑤다.

1951년 해병대 12기로 입대, 만 4년간 복무했던 방창효(84)씨는 기초생활보호대상자다. 정신지체장애 2급인 딸과 당뇨합병증·골다공증·백내장으로 고생하는 아내(76)의 병수발을 혼자 도맡아 한다. 방씨는 "가족들 약값이라도 벌어보려고 취로사업이나 전단지 배포 일을 찾았지만 모두 안됐다"고 말했다. 그는 "장애인은 버스라도 무료인데, 우리 참전유공자는 그런 혜택도 없다"고 말했다.

사회로부터 소외됐다고 느끼는 참전유공자들은 마땅히 갈 곳도, 즐길 것도 없다고 하소연한다. 실제 보훈교육연구원의 '참전유공자 생활실태' 조사에 따르면 참전유공자 10명 중 6.4명이 TV를 보거나 산책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원도 화천에서 포병으로 참전했다는 박태일(78)씨는 "2~3일에 한 번씩 인천에서 전철을 타고 서울 종묘공원을 찾는다"며 "하루종일 집에 멀거니 앉아있기도 심심해 이곳에 나온다"고 했다. 종묘공원엔 매일 오전부터 국가유공자(참전유공자) 배지를 단 참전용사 수백 명이 바둑·장기를 두거나 시국강연회를 듣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자신의 전문성이나 경륜, 경험을 사회에 돌려주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다. 전쟁 때 화랑무공훈장을 두 개나 받은 김용철(80)씨는 요즘 군이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는 6·25전사자 유해발굴 활동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여주·이천·가평·화천 등 자신이 싸웠던 전장을 찾아가, 전투가 치열했고 전우가 묻혀 있었던 장소를 알려주고 있다. 김씨는 "전우들이 아직도 차가운 땅속에 묻혀 있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었다"고 했다.

서울대이화여대 의대 교수를 역임한 성낙응(85)씨는 4년 전부터 6·25 무공훈장 수훈자들을 대상으로 건강관리 강의를 하고 있다. 그는 의대를 졸업한 1950년 입대해 1956년 소령으로 전역할 때까지 군 복무를 했다. 전쟁 때는 충무·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성씨는 "국가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운 참전용사들이 어렵게 사는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며 "별것 아니지만 배운 것으로 동료 참전용사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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