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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의의

역사적의의
1960년 3월 15일 이승만 자유당 독재 정권이 장기집권을 유지를 위해서 부정선거를 획책하자
마산시민과 학생들의 분연히 일어나 불의에 항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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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3월 15일

3월 15일 1차 의거에 이어, 4월 11일 그동안 행방불명 되었던 김주열 군이 머리에 최루탄이 박힌 처참한 모습의 시체로 마산 중앙부두에서 떠오르자 격분한 시민들이 다시 2차 의거를 일으켜 피흘리며 싸웠습니다. 이 항쟁에서 12명이 사망하고 250여명이 경찰이 쏜 총에 맞거나 체포 구금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였습니다.

이러한 마산시민과 학생들의 자연발생적이고 의로운 투쟁에 대한 경찰당국의 가혹한 탄압은 전 국민들로 하여금 슬픔과 분노를 불러 일으키게 했습니다. 그리하여 이는 곧 "부정선거 다시 하라.", "구속된 마산 학생 석방하라."는 구호와 함께 4 ·19로 이어져, 드디어 4월26일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함으로써 민권이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자유 · 민주 · 정의가 기본 정신인 3 · 15 마산의거는 현대사에 있어 최초의 민주 ·민족운동으로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 발전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으며 또한 민족 평화 통일운동으로 확산되어 나갔습니다.

그 도도한 물결은 4 ·19혁명, 부마민주화운동, 6월항쟁, 5 ·18민중항쟁에 이르기까지 한 시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미래진행형으로 영원히 이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