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독립운동가 '최석순' 선생님 | |
「2월의 독립운동가」 최 석 순(崔碩淳) 선생님
(출생미상 ~ 1925. 2. 25)
국가보훈처에서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국권회복과 조국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최석순 선생을 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습니다.
선생은 평안북도 삭주에서 태어났으며 시기는 미상입니다(동생인 최석준이 1892년 출생인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태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1919년 3 ·1운동이 일어나자 동생과 함께 고향인 삭주에서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다가 일경의 촉수가 미치자 만주로 망명하였습니다.
만주 망명 후 곧 바로 남만주의 독립군 단체인 대한독립단에 가입하여 집서지단장으로 활약하였으며, 1922년 8월 남만주 독립군 단체의 통일조직으로 대한통의부가 조직되자 여기에 참여하여 의용군 제2중대장을 맡아 평북 초산․벽동 일대로 진입하여 일본 군경을 공격하는 등 여러 차례 국내 진공작전을 수행하였습니다.
나아가 1924년 5월 대한통의부 의용군 제1중대장 백광운 등과 함께 남만주를 근거지로 상해 임시정부를 봉대하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육군주만참의부를 성립시켰습으며, 참의부 의용군 제2중대장, 이어 참의부 최고 지도자인 참의장 겸 제2중대장으로 여러 차례 국내 진공작전을 지휘하는 등 크게 활약하였습니다.
특히 1924년 5월 제2중대 휘하 대원인 장창헌 등으로 하여금 평북 위원의 대안인 마시탄에서 압록강을 순시중인 사이토 총독을 기습 공격하게 하였습니다. 그럼으로써 만주의 독립운동계를 크게 고무시켰고, 한만 국경지대의 안정을 대내외에 선전하려던 조선총독부의 계획을 수포로 만들어 버리는 효과를 올렸습니다.
이로 인해 일제는 남만주지역의 독립군 부대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계획하였고, 그런 과정에서 고마령참변이 발생하였습니다. 1925년 2월 선생은 참의부 참의장 겸 제2중대장으로 국내 진공작전과 군자금 모집, 일제 기관 파괴 등 작전회의를 고마령에서 주재하던 중, 일제 초산경찰서 경찰대의 습격을 받은 것입니다.
선생 일행은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중과부적으로 결국 20여 명의 동료들과 함께 1925년 2월 25일 전사, 순국하였습니다. 동생인 최석준도 1922년 일경과 격투 끝에 전사, 순국하였으므로 형제가 모두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산화한 것입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수여하였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독립기념관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는 선생의 뜻과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별도의 전시실을 마련하여 관련자료와 사진을 2월 한 달간 전시하는 한편, 순국선열유족회에서도 이 달의 독립운동가 학술강연회를 개최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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