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새소식

국립3·15민주묘지 - 새소식 상세보기 - 제목, 내용, 파일 정보 제공
4월의 독립운동가 "이동휘" 선생님
성재(誠齋) 이 동 휘(李東輝) 선생님 (1873. 6. 20 1935. 1. 31) 국가보훈처에서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국권회복과 조국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이동휘 선생을 4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습니다. 1873년 함남 단천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선생님은 사관양성소를 거쳐 육군 참위로 임관한 뒤 강화도 진위대장 등을 거쳤으나, 1904년 러일전쟁 발발 이후 일제의 침략이 가속화되자, 1905년 3월 군직을 사임한 뒤 강화도에 보창학교 등 사립학교를 세워 민족교육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1907년부터는 교육 계몽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비밀결사 신민회의 지도자로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던 중 1911년 이른바 ‘신민회 사건’에 연루되어 1년간 유배되는 고초를 겪기도 하였습니다. 유배에서 해제된 뒤, 1913년 압록강을 건너 북간도로 망명하여 한인자치기관인 간민회를 지도하고, 러시아 연해주로 옮겨 동포사회의 단합을 강조하며 독립의식을 고취하였고, 나아가 1914년 만주와 러시아의 민족운동세력을 규합한 대한광복군정부의 지도자로 독립전쟁계획을 총지휘하였습니다. 3 ·1운동 후 통합임시정부가 성립되자 국무총리로 취임하여 러시아에 특사를 파견하고 무장투쟁노선을 채택하게 하는 등 임정의 독립운동 노선을 강화하는데 노력하였으며, 1921년 상해에서 고려공산당을 창당하고 극동인민대표대회에 참여하여 한국의 독립을 요구하는 등 독립운동에 힘썼습니다. 나아가 국제공산당에서 한인의 이익을 대변하고, 또 국제혁명가후원회 위원으로 혁명운동 과정에서 희생되고 고통 받는 혁명가와 그 가족들을 돕는 활동을 꾸준히 펴다가 1935년 1월 31일, 62세를 일기로 영면하였습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수여하였으며, 이와 관련하여 독립기념관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는 선생의 뜻과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별도의 전시실을 마련하여 관련자료와 사진을 4월 한 달간 전시하는 한편, 순국선열유족회에서도 이 달의 독립운동가 학술강연회를 개최할 계획입니다.
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