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난과 냉대… 특수임무수행자, 5·18 구금·연행자까지
국가유공자 혜택받지만 '일반 참전유공자'는 홀대 "형편없는 대우… 껍데기만 유공자"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사는 참전유공자 홍모(81)씨는 평일 점심을 주로 서울 종로구에 있는 한 노인복지센터에서 무료 급식으로 해결한다. 6·25전쟁 때 8촌 이내 친척 11명이 같은 날 군에 들어갔지만 살아남은 사람은 홍씨 혼자뿐이다. 휴전 직전 파주 장단역 앞에서 철조망 설치작업을 하다 적 포탄에 왼쪽 무릎 파편상을 입었지만 상이(傷痍) 신청은 하지 않았다.
목숨은 건졌어도 그의 삶은 극빈(極貧)의 그늘진 구석에서 몸부림치고 있다. 그의 한 달 총수입은 33만원쯤이다. 기초노령연금 14만4000원(부부), 6·25 참전명예수당 9만원, 자녀들이 가끔 주는 용돈 10만원 정도다. 홍씨는 "공과금 내고, 쌀 사고 나면 남는 돈이 거의 없다"며 "입이라도 하나 줄이기 위해 점심을 무료 급식으로 해결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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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낮기온이 영상 30도를 웃돌았던 지난 18일 6·25 전쟁 때 무공훈장 3개를 받은 이행옥(81)씨가 강남 일대를 걸어다니며 열쇠가게 광고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오진규 인턴기자
◆가난에 찌든 참전용사들
참전용사들은 대부분 자신을 우리 사회의 중하층이라고 생각했다. 보훈교육연구원 실태조사에 따르면 자신의 생활수준이 '하층'이라고 답한 참전유공자는 절반이 넘는 53.4%에 달했다. '중하층'이라고 답한 33.6%를 합치면 전체 응답자의 87.0%가 경제 수준이 낮다고 대답한 것이다.
밥 한끼 때우려고 무료급식센터를 맴돌거나 아예 식사를 건너뛰는 참전용사들도 많다.
1951년 입대, 9사단에 있을 때 눈에 파편을 맞고도 전투를 계속해 화랑무공훈장을 받은 유래회(79)씨의 한 달 수입은 24만원이 전부다. 기초노령연금으로 9만원을 받고 훈장에 따른 수당으로 15만원(올해 기준)을 받는다.
하지만 훈장수당으로는 임대아파트 임대료(15만6000원)도 낼 수 없다. 여기에 관리비가 여름엔 10만원쯤, 겨울엔 15만원쯤 된다. 유씨는 "자식들이 한 달에 용돈 20만~30만원 줘서 겨우 살고 있다"며 "평소에 아침·저녁만 먹고 점심은 건너뛴다"고 말했다. 그는 "자존심 때문에 줄 서서 공짜 밥 먹는 건 못하겠다"고 했다.
서울의 한 복지센터에서 만난 박용우(77)씨는 "집이 있는 노원구의 복지센터에서도 밥을 주지만 창피해서 지하철을 세 번 갈아타고 이곳에 와서 점심을 먹는다"고 말했다. 변은준(81)씨는 "나라가 돈 적게 줘서 배가 고프다"며 "종로의 무료급식기관엔 줄이 너무 길어서 그냥 점심은 거른다"고 말했다.
경기도 안양에 사는 전인호(78)씨는 10여년 전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부인과 이혼했다.
전쟁 때 중공군 화염방사기에 두 다리에 화상을 입은 그는 지난 2005년부터 상이 7등급 보훈급여를 받기 시작했다. 전쟁 때 자신이 충무무공훈장을 받았다는 사실도 그때야 처음 알았다. 먼 친척의 집 단칸방에 얹혀사는 그는 "아침은 거르고 점심·저녁은 인근 복지관 등에서 해결한다"며 "전쟁에서 공을 세웠는데 왜 이런 삶을 살아야 하는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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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용사들은 정부에서 받는 돈은 삶에 별 도움이 안 된다고 했다. 무공훈장 수훈자에겐 '무공영예수당'으로 월 15만원, 참전 사실만 인정되는 참전유공자에겐 '참전명예수당'으로 9만원을 준다. 특히 무공수훈자의 경우 훈장이 1개이든 5개이든 관계없이 똑같은 금액을 받으며, 태극이나 충무·화랑 등 등급에 따른 차등도 없다. 한 참전유공자는 "참전수당 9만원은 한마디로 '애들 사탕 값'"이라며 "이런 대우를 받는 우리의 처지가 너무 서글프다"고 했다.
◆"다른 국가유공자들은 혜택도 많이 받는데…" 상대적 박탈감 심각
지난 17일 만난 김모(81)씨는 "우린 '빽'도 없고 명예 때문에 할 말도 못해 지지리도 혜택을 못 받는다"고 하소연했다. "옛날엔 불평·불만이 적었는데, 다른 유공자들이 돈 받고 혜택받는 걸 알게 되면서 우리가 홀대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도 했다.
실제 보훈제도를 분석한 결과 특히 '일반' 참전유공자들이 받는 혜택은 상대적으로 크게 빈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북파공작원 등 특수임무수행자의 경우 일시불로 평균 1억5600만원(임무 수행자의 경우)을 받은 뒤 교육과 취업, 의료 등에서는 국가유공자와 동일한 혜택을 받는다. 5·18 민주유공자도 일시 보상금과 함께 국가유공자 혜택을 받는다. 구금·연행만 됐어도 마찬가지다.
국가유공자가 되면 수업료·병원비가 면제되고, 자녀들은 3명까지 특별 고용된다. 또 저리로 대출을 받을 수도 있고 자녀들이 취업 시험을 치를 때는 5~10%의 가산점도 받는다.
이에 비해 6·25 참전용사의 경우 '상이군경'과 '무공수훈자'는 국가유공자 혜택을 받지만 일반 참전유공자는 혜택이 별로 없다. 월 9만원의 수당과 보훈병원 진료비 60% 감면 정도다.
지난 2008년 국가유공자예우법 개정·시행으로 6·25 참전유공자도 국가유공자에 편입됐지만, 실제 혜택은 참전유공자예우법에 따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6·25참전유공자회 관계자는 "참전유공자는 껍데기만 국가유공자일 뿐"이라며 "돈은 좀 적어도 다른 혜택은 국가유공자 수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