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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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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영천호국원 - 하늘편지 상세보기 - 공개여부, 제목, 내용, 파일, URL 정보 제공
공개여부 공개
할아버지 그곳은 지낼 만 하신가요?
오늘 어쩌다 국군 행사 음악을 듣게 되었어요.
그걸 들으니 할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어요.
단지 할아버지께서 군인이셨다는 이유 하나만으로요.
그래서 평소에는 생각도 않던 국군 계급이랑 할아버지께서 추서받으신(돌아가신 후에 훈장을 받으면 쓰는 말이라던데... 이렇게 쓰는 말이 맞나 잘 모르겠어요. 죄송해요.) 화랑무공훈장이 어떤 것인지 찾아보았어요.
막연히 대단한 직급과 훈장이었는 것만 알고 있었는데 자세히 알고 보니 훨씬 훨씬 대단한 것들이었어요.
할아버지를 언제나 존경해왔고 좋아했지만 이제 더욱 구체적으로(손녀딸 단어선택이 참 이상하지요?) 존경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날은 생신을 지내시고 딱 한달 지난 때였지요.
묘비에 적힌 생신은 제가 엄마한테 들었던 것과 달랐지만 할머니께서도 그러셨듯 늦은 출생신고 때문이었겠네요.
그해는 제가 고작 6살 밖에 되지 않았을 적이라 할아버지께서 병원 침대에서 눈을 감으시는 모습을 옆에서 마주하고도 그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멀뚱멀뚱 다른 가족들이 우는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지요.
저의 행동이 엄마는 이해가 안 되었는지 사람도 많은 병원 복도에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슬프지도 않냐는 호통도 들었었죠.
그때 그게 너무 무서워서 주저앉았던 게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네요.
지금 생각하면 6살짜리가 죽음을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었겠죠.
그리고 엄마가 슬픔에 겨워 그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는 것도 알아요.
당시 엄마의 눈에는 6년동안 동고동락하며 부모 대신 자길 키워주고 보살펴준 조부모 중 한 분이 눈 앞에서 돌아가셨는데도 눈 하나 꿈뻑 안 하는 딸이 이상했을 테니까요.
지금이라도 그때로 돌아간다면 할아버지를 부르며 울고 싶을 정도에요. (사람은 죽어도 잠시간은 소리를 들을 수 있다더라고요.)
저는 할아버지 장례식장에서도 3일간 한번도 울질 않았죠.
죽음을 이해 못한 아이에겐 그저 사람이 많이 오는 떠들썩한 모임으로 느껴졌을 것 같아요.
제가 할아버지를 보내드리고 처음으로 운 건 장례절차가 모두 끝나고 할머니와 집으로 돌아간 날이었어요.
저는 당시 항상 밤이 되면 할아버지 방에 놀러가서 TV 보시는 할아버지를 굳이 방해하며 꺄르르 장난치다 잠들었잖아요?
그때마다 할아버지는 저를 업어서 할머니랑 제 방에 데려다주셨고요.
사실 그중 대부분은 잠들어있지 않았어요.
할아버지 등에 업히는 게 너무 좋았거든요.
저는 지금도 담배를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지만 그때 할아버지 점퍼에서 나던 은은한 담배향 만큼은 정말 좋아했어요.
왠지 그 과정을 거쳐야지만 잠들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그날부터는 그럴 수 없었잖아요?
할아버지 방은 이제 비었으니까, 나를 업어서 데려다줄 사람이 없잖아요?
그제서야 할아버지가 더이상 안 계신다는 걸 이해했나봐요.
방벽에 걸린 영정사진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엉엉 울기 시작했어요.
우리 가족 중에서 가장 늦게 할아버지를 추모하게 된 셈이죠.
너무 너무 죄송할 따름이에요.
손수 멋진 이름까지 지어주신 귀한 손녀딸인데 가시는 길 하나 진심으로 배웅해드리질 못해서요.
주무시던 할머니도 깨서 달래주시고 그래도 계속 울기만 해서 엄마랑 전화연결도 해주셨어요.
제가 할아버지를 부르면서 울기만 하니까 엄마도 마음이 안 좋았나봐요.
할아버지는 편하게 가셨고 좋은 곳에 가신 거니까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울면 할아버지가 슬퍼하신다고 해줬어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할아버지 없이 잠들 수 있었어요.
그 뒤로는 제 기억상 더이상 울지않고 잘 수 있게 되었던 것 같아요.
할아버지가 언제나 저를 보고 계신다고 생각하며 지냈거든요.
엄마는 이제 할아버지의 옛날 이야기를 즐겁게 말해줘요.
저는 모르는 할아버지의 대단한 점과 엉뚱한 부분들을 알 수 있어서 좋아해요.
할머니는 최근 치매가 많이 심해지셨어요.
요양원에서 지내고 계시는데 거의 매일 저에게 전화로 똑같은 걸 물어보고 계세요.
제가 엄마 아빠랑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급격히 안 좋아지셔서... 역시 제 걱정으로 신경을 많이 쓰고 계시다가 그럴 이유가 사라지니 그런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되네요.
이런 모습들도 다 할아버지는 보고 계셨을까요?

저는 지금도 곳곳에 남아있는 할아버지의 흔적을 좋아해요.
할아버지의 사진, 훈장, 유공자 명패, 그리고 제 이름까지도.
제 이름은 제가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꽤나 독특한 이름으로 통하고 있어요.
사실 초등학교 때는 놀림도 많이 받았지만 저는 제 이름이 싫었던 적은 없었어요.
할아버지가 갓 태어난 저를 위해 골똘히 생각해주신 이름이고 빛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해서 이리 지었다는 것을 항상 들어왔기 때문인 것 같아요.
엄마 아빠는 당시엔 너무 독보적인 이름이라 나중에 커서 제가 힘들어하면 개명을 해줄 의향이 있었다고 했지만 저는 전혀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어요.
이 이름 덕에 내가 좋아하는 이들은 날 더 잘 기억해줬고 재미난 일들도 아주 많았거든요.
특히 할아버지께서 제 이름을 생각하시던 때의 일화는 아직까지도 가족들과 제 친구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는 재밌는 이야기 중 하나랍니다.

할아버지, 저는 내년에 대학에 가게 되었어요.
제가 원하던 진로로 향하는 학과에요.
2년간 회사를 다닐 때는 시간이 없어 한 번을 뵈러가보질 못했네요.
죄송해요.
다음에 기회가 되는 날 꼭 찾아뵐게요.
저는 항상 할아버지를 사랑해요.
외갓집 마당에서 할머니가 가꾸신 화단 앞 지정석에 앉아계신 할아버지, 그리고 그 무릎 위에 앉아 바라보던 하늘을 좋아했어요.
항상 저를 생각해주시고 챙겨주시고 엉뚱한 일을 벌여도 귀엽게 봐주시던 할아버지가 너무 좋아요.
감사해요.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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