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은 안중근 의사의 의거 100주년이 되는 해다. 안의사의 의거란 1905년 굴욕적인 을사늑약과 조선의 식민지화를 주도했던 일본의 조선 통감부 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안중근 의사께서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역에서 권총으로 저격해 사살하였던 사건을 말한다.
안중근 의사의 의거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국립5.18민주묘지를 비롯하여 전국의 국가보훈처 산하 기관에서는 현재 ‘안중근 의사 손도장 찍기’ 행사를 실시하고 있다. 우리 소의 경우, 민주묘지를 찾은 방문객을 대상으로 10. 12부터 10.23까지 안중근 의사 손도장 찍기 행사를 실시하고 11. 8까지 이를 민주의 문 우측에 거치하여 안 의사의 나라사랑 정신을 고취시킬 예정이다.
내가 2009. 9. 30. 이곳 국립5.18민주묘지 시설관리과장으로 발령받아, 처음 맞이하는 행사가 바로 위 ‘안중근 의사 손도장 찍기’ 행사였다. 이곳에 와 첫 경험하는 행사라 그런지 조심스럽기도 하고 떨리기까지 한, 나에게는 아주 특별한 행사였다. 행사 개시 당일 소장님의 안중근 의사의 일생과 단지동맹에 대한 의미심장한 설명이 있어 행사의 의미는 더해 갔다.
안 의사는 하얼빈 의거가 있었던 그 해 3월 유동하, 우덕순, 조도선, 김기룡, 강기순, 박동석 등 11명의 동료들과 함께 조국을 위한 마음을 보이고자, 자신들의 목숨을 기꺼이 내놓겠다는 맹세를 결심하였고, 위 12명의 청년들은 칼을 들어 “나라를 위해 몸 바칠 것을 오늘 이 자리에서 손가락을 끊어 맹세하자”라는 말과 함께 손가락을 절단한 후, 피가 흐르는 손으로 커다란 태극기에 ‘대한독립’의 넉자를 적었고, “대한독립 만세, 대한독립 만세,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고 한다. 이것이 그 유명한 안중근 의사의 단지동맹 이야기다.
손가락을 끊으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 바치겠다는 '단지동맹'을 맺으며 피의 맹세를 나눴다는 안 의사의 무명지에 대한 이야기를 소장님으로부터 듣고 단지동맹 당시 안 의사가 느꼈을 비장한 마음을 생각하자니, 가슴속에 뜨거운 덩어리가 솟아오르고 안 의사의 숭고한 독립정신에 절로 머리가 숙여졌다.
러시아 연해주에는 이러한 안 의사의 단지동맹을 기념하기 위해 지난 2001년 10월 광복회와 고려학술재단에서 세운 단지동맹비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날 잘려나간 열 두 개의 무명지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 열 두 개의 무명지는 지금 어디에서 누구의 가슴을, 누구의 정신을 깨우고 있는 것일까?
이 곳 국립5.18민주묘지 또한, 망국의 한이 서리던 시절에 대한독립을 꿈꾸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안 의사와 같은 마음과 정신으로, 1980년 당시 이 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자신의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고 민주주의를 사수하였던 민주 열사들이 누워 계시는 곳이다. 개인의 목숨보다는 나라의 민주주의를 선택하였던 민주 열사들이 누워 계시고 민주, 인권, 평화, 소통, 공동체 정신 등으로 대변되는 5.18 민주정신이 살아 숨 쉬는 국립5.18민주묘지에 내가 발령받아 각종 시설과 안전관리 등을 책임져야 한다는 막중한 업무를 생각하자니 어깨가 무거워짐을 느낀다. 그러나 주어진 책임이 큰 만큼 작은 소리에도 귀를 세우고 민주열사들이 편히 잠들 수 있고 그 유족들의 편익이 최적화되며 국민과 함께하는 열린 묘역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함은 물론이고 미래 후손들에게 이어져야 할 5.18민주정신을 널리 선양하는 것이 나의 사명임을 실감하고 있다.
이곳에서 5.18민주정신 등을 심도 있게 배우고 익히며, 실천을 통해 내 자신이 성장하고 깊어져 가기를 조용히 소망해 본다. 지금 국립5.18민주묘지는 빨간 단풍이 그 색을 더해 가면서 가을이 깊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