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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편지

국립5·18민주묘지 - 하늘편지 상세보기 - 제목, 내용, 파일, URL 정보 제공
신군부의 사면은 무효
5?18 민주화 운동 30주년(신군부의 사면은 무효)



1980년 5월은 잔인하였다.

1972년에 시작된 유신 체제의 연장을 획책하던 박정희 정권은 결국 79년 10월 16일 소위 부마사태로 불리는 부산?마산 지역의 민주 항쟁을 불러오고, 정권 내부 강온파의 대립으로 그 해 10월 26일 궁정동 안가의 연회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최측근인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게 피격, 사망하자 불안한 정국을 틈타 소위 신군부라는 전두환, 노태우 등이 불법적으로 군대를 동원 12월 12일 서울로 진격 점령하는 이른바 12?12 사태를 일으켜 전격적으로 비상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부와 정치권을 장악, 신군부의 독재정치가 시작되면서 잔인한 1980년의 5월은 시작되었다.



아! 5월은 잔인하였다.

1980년 봄, 각 대학의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민주화의 요구와 군사 쿠데타를 비난하는 서울역 광장 집회, 소위 서울의 봄이 있었으나 유혈사태를 우려하여 자진 해산하였다. 이에 고비를 넘겼다고 생각한 군부는 정권 찬탈의 목적으로 비상 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했으나 20여 년의 군사 독재로 진절머리가 났던 당시는 학생은 물론이고 시민들의 정서는 더 이상 총칼로도 거스를 수 없는 상태였다.

전국이 계엄 하에 놓인 80년 5월 18일 9시 20분경 전남대 정문에서 학생들이 등교 저지에 항의하자 당시 계엄군인 7공수여단 병력들이 집단 폭행,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사태에 격분한 시민과 학생 천여 명이 12시쯤 광주 금남로로 집결, 계엄 철폐와 민주화의 요구가 거세지자 처음에는 투석전에서 결국 5월 20일에는 급기야 총성이 일어나면서 광주 민주화운동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말았다.



5월이여! 그대는 정말 계절의 여왕이런가?

싱그러운 신록과 온갖 생명의 축복인 5월! 어찌 이토록 금남로를 핏빛으로 물들인다 말인가? 결국은 시민군이 결성되고, 본격적인 시가전이 시작되어 수백 명의 사상자가 속출했다. 반란군 신군부의 총칼 앞에 우리 모두는 얼어붙어 5월의 한겨울 긴 터널 깊숙이 채워져 십 수 년 동안 빙하속의 토우가 되고 화석이 되어갔다.



이후 신군부는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괴이한 단체를 만들어 장충 체육관에서 대통령을 선출하는 형식으로 전두환이 7년 동안 집권하였고, 그 다음 국민 직선으로 바뀐 후에 노태우가 5년 동안 대통령을 했다.

다시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며 김영삼은 김종필, 노태우 당시 대통령과 합당하여 김영삼 씨가 정권을 잡자 역사 바로 세우기의 일환으로 12?12사태의 원흉들에 대한 심판도 시작되어 기소된 대부분이 반란죄가 인정되어 형을 집행하게 되었다. 특히 국회의 5?6공 청문회는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노무현씨가 훗날 대통령이 되는 계기가 된다.

김영삼에 이어 대통령으로 당선된 김대중 차기 대통령 당선자가 국민 화합과 국론 통일이라는 이름하에 건의하고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12?12 반란 5적을 비롯하여 관계된 많은 수형자들을 1995년 광복 50주년 기념으로 특별 사면을 단행했다.



5월은 정말 잔인했다!

잔인한 5월에 핀 꽃들이여! 그대들의 피와 눈물은 조국의 영원한 꽃입니다. 그 꽃은 시대의 부름이요, 사명이었다.

그러나 신군부의 특별사면은 양 김씨의 범주를 넘은 것이다. 조국 민주화의 제단에 육신을 바쳐 이룩한 5월 영령들의 거룩한 사명에 신군부의 특별사면이라는 것은 양 김씨는 물론이고 동시대인인 우리 모두가 5월의 잔인함에 동참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수천 년의 세월도, 철권의 모택동도 글자 하나 바꾸지 못한 공자의『춘추』처럼 민족과 역사에 지은 죄, 씻을 방도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신군부 세력들이 진정한 반성과 사과로 아무리 목맨다해도 용서나 사면은 될 수도 할 수도 없으니 양 김씨가 사면했다고 해도 그것은 결단코 무효다. 그래서 역사의 전면에는 아무나 함부로 나서서는 안 된다.



아! 이제 5월은 그대들의 피로 진정한 여왕이 되었소이다!



오늘 부끄럽게도 아직 5?18 성역을 참배하지 못하였기에 5?18 30주년을 맞으면서 안으로 흐르는 눈물로 영령들의 명복을 빌며 유족들께는 위로를 드리며, 올해도 또 직접 가서 향을 사르지 못하는 이 부끄러움의 용서를 빌며 멀리서나마 만해선생의 다음 시와 함께 이글을 성역에 바친다.



논개의 애인이 되어 (만해 한용운)

그의 묘에

날과 밤으로 흐르고 흐르는 남강(南江)은 가지 않습니다.바람과 비에 우두커니 섰는 촉석루(矗石樓)는 살 같은 광음(光陰)을 따라서 달음질칩니다.논개(論介)여, 나에게 울음과 웃음을 동시(同時)에 주는 사랑하는 논개여.그대는 조선의 무덤 가운데 피었던 좋은 꽃의 하나이다.

그래서 그 향기는 썩지 않는다.나는 시인으로 그대의 애인이 되었노라.그대는 어디 있느뇨. 죽지 않은 그대가 이 세상에는 없고나.나는 황금의 칼에 베어진 꽃과 같이 향기롭고 애처로운 그대의 당년(當年)을 회상(回想)한다.

술 향기에 목 맺힌 고요한 노래는 옥(獄)에 묻힌 썩은 칼을 울렸다.춤추는 소매를 안고 도는 무서운 찬바람은 귀신 나라의 꽃수풀을 거쳐서 떨어지는 해를 얼렸다.갸날픈 그대의 마음은 비록 침착하였지만 떨리는 것보다도 더욱 무서웠다.아름답고 무독(無毒)한 그대의 눈은 비록 웃었지만 우는 것보다도 더욱 슬펐다.붉은 듯하다가 푸르고 푸른 듯하다가 희어지며 가늘게 떨리는 그대의 입술은 웃음의 조운(朝雲)이냐 울음의 모우(暮雨)이냐 새벽달의 비밀이냐 이슬 꽃의 상징(象徵)이냐.빠비 같은 그대의 손에 꺾이우지 못한 낙화대(落花臺)의 남은 꽃은 부끄럼에 취(醉)하여 얼굴이 붉었다.옥 같은 그대의 발꿈치에 밝히운 강 언덕이 묵은 이끼는 교긍(驕矜)에 넘쳐서 푸른 사롱(紗籠)으로 자기의 제명(濟名)을 가리었다.아아, 나는 그대도 없는 빈 무덤 같은 집을 그대의 집이라고 부릅니다.만일 이름뿐이나마 그대의 집도 없으면 그대의 이름을 불러 볼 기회가 없는 까닭입니다.나는 꽃을 사랑합니다마는 그대의 집에 피어 있는 꽃을 꺾을 수는 없습니다.그대의 집에 피어 있는 꽃을 꺾으려면 나의 창자가 먼저 꺾어지는 까닭입니다. 나는 꽃을 사랑합니다마는 그대의 집에 꽃을 심을 수는 없습니다.그대의 집에 꽃을 심으려면 나의 가슴에 가시가 먼저 심어지는 까닭입니다.

용서하여요 논개여, 금석(金石)같은 굳은 언약을 저버린 것은 그대가 아니요 나입니다.용서하여요 논개여, 쓸쓸하고 호젓한 잠자리에 외로이 누워서 끼친 한(恨)에 울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니요 그대입니다.나의 가슴에‘사랑'의 글자를 황금으로 새겨서 그대의 사당에 기념비를 세운 그대에게 무슨 위로가 되오리까.나의 그대에‘눈물'의 곡조를 낙인(烙印)으로 찍어서 그대의 사당에 제종(祭鐘)을 울린대도 나에게 무슨 속죄가 되오리까.나는 다만 그대의 유언대로 그대에게 다하지 못한 사랑을 영원히 다른 여자에게 주지 아니할 뿐입니다. 그것은 그대의 얼굴과 같이 잊을 수가 없는 맹세입니다.용서하여요 논개여,

그대가 용서하면 나의 죄가 신에게 참회를 아니 한 대도 사라지겠습니다.천추(千秋)에 죽지 않는 논개여,하루도 살 수 없는 논개여,그대를 사랑하는 나의 마음이 얼마나 즐거우며 얼마나 슬프겠는가.나는 웃음이 겨워서 눈물이 되고 눈물이 겨워서 웃음이 됩니다.용서하여요 사랑하는 오오 논개여.

2012년 5월 18일

基谷散人 張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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