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묘 방해 문인석 한쌍 옮겨 유족민원 해결 | |
해결 못한 숙원을 마침내 풀었습니다.
유족들이 오래 전 요청한 '1, 2묘역 문인석(文人石) 이전 민원'을 마침내 해결했습니다. 5묘역 확충공사가 한창이던 지난해 10월 20일 오전, 묘소에 바싹 붙은 무게 2~3t 문인석 2개를 옮기는 작업을 완료했습니다. 양쪽의 문인석은 1묘역과 2묘역 사잇길 시작점에 위치한 탓에, 2묘역 배우자 합장 때 기중기(크레인)가 코너에서 회전하며 묘역 뒤쪽으로 진입하는 것을 방해했습니다. 문인석에 가까운 2묘역 묘소 유족은, 문인석이 묘소 앞을 반쯤 가로막아 기일, 설, 추석 때 후손이 절을 올릴 공간이 협소하다며 문인석 이전 민원을 수년 전부터 제기했습니다. 1묘역 묘소 유족도 묘소에 가깝게 위치한 문인석을 2묘역 문인석과 나란히 옆으로 동시에 옮겨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유족의 민원을 잊지 않은 국립4·19민주묘지 직원들은 5묘역 공사를 진행하면서 건설 중장비(포크레인, 크레인 등)를 활용하면 문인석을 옮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했습니다. 5묘역 공사를 잠시 중단하고, 1, 2묘역 문인석을 하나씩 끈으로 묶고 포크레인으로 조심스레 들어올려 유영봉안소 쪽으로 3m 가량 이동해 고정하는 작업을 반복했습니다. 이로써 진입로 코너에서 진입하려는 중장비 회전이 수월해졌고, 코너에 인접한 묘소 2곳에도 성묘하거나 참배할 공간을 확보했습니다. 올해 1월 설 명절 때 성묘 온 1묘역 고(故) 김상찬 님의 유족들은 문인석이 옮겨진 것을 알고 직원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했습니다. 1~3묘역 코너에 놓인 문인석, 석등(石燈), 석탑(石塔) 6개는 1960년 4·19혁명 당시 부정선거로 당선된 자유당 이기붕 부통령 집 정원에 있던 것을 1963년 4·19묘지를 조성하면서 4·19혁명 희생자 유족과 부상자 가족들이 옮겨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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