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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소식

국립4·19민주묘지 - 새소식 상세보기 - 제목, 내용, 파일 정보 제공
1960년 ‘3·1격문' 주역 고(故) 복진풍 님 영결-안장식
1960년 3·15 부정선거 움직임을 막으려고 서울에 전단을 뿌린 ‘3·1 삐라사건'의 주역 고(故) 복진풍 님 영결식과 안장식을 6월 11일 오전 엄수했습니다.

고인은 1938년 충남 청양군에서 태어났으며, 4·19혁명 당시 건국대 정치학과 4학년 학생으로 자유당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앞장 섰습니다.

특히 동료 학생들과 함께 ‘공명선거 추진 전국학생 투쟁위원회’를 만들어 서울운동장 3·1절 41주년 기념식장에서 ‘부정선거 감행하면 백만학도 궐기한다’는 내용을 적은 삐라(격문 전단)를 뿌려 4월혁명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이 삐라 격문은 1960년 2월 27~28일 강북구 수유동 신익희 선생 묘소 제실(祭室)에서 비밀리에 등사했습니다.

영결식에 앞서 유족은 고인의 영정과 위패를 들고, 2018년 강북구청이 제실 근처에 세운 '4·19혁명 사적비'와 안내판을 찾았습니다.

고인과 유족들은 생전 이곳을 여러 차례 방문해 4월혁명을 회고하고 신익희 선생 묘소에 참배했습니다.

사월학생혁명기념탑 앞에서 거행한 영결식에선 4·19혁명공로자회 박훈 회장이 조사(弔詞)를 발표했습니다.

이어 4·19혁명공로자회 권준화 사무총장이 고인의 약력을, 김만옥 회원국장이 4·19 비문(碑文)을 낭독했습니다.

4·19민주혁명회 김갑숙 회원국장, 4·19혁명희생자유족회 김영일 사무총장, 4·19단체 동료들, 국립4·19민주묘지 이창섭 소장과 유족이 헌화와 분향을 하며 고인의 영면을 기원했습니다.

또, 고인과 민주화운동을 함께 한 김덕룡 민주화운동추진협의회 이사장이 참석해 헌화·분향·허토하며 "진풍이 형, 하늘나라에서 영면하세요" 인사하며 애통해 했습니다.

영결식에 이은 안장식은 4묘역에서 거행됐으며, 하관(下棺)에 이어 유족과 조객 모두 허토하면서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습니다.

묘소에는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부인 손명순 여사가 보낸 조화 화환이 놓였습니다.

고인은 4·19혁명 당시 계엄사령부의 주모자 검거를 피해 도주하다가 우연히 야당정치인 김영삼(YS) 집으로 피신해 1주일간 기거하며 인연을 맺었고, 이후 민주산악회-민추협 결성, 60~80년대 민주화 운동, 대통령 선거 등 정치활동을 함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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