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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소식

국립4·19민주묘지 - 새소식 상세보기 - 제목, 내용, 파일 정보 제공
강추위 속 4·19부상자 고(故) 신동호 님 영결-안장식
며칠째 영하 12도를 넘나든 1월의 '북극 한파'로 하는 수 없이 '영결식 오전-안장식 오후' 분리 진행이 불가피했습니다.

혹한이 이어지던 1월 28일 오전, 4·19혁명 부상자 고(故) 신동호 님의 영결식을 엄수했습니다.

사월학생혁명기념탑 앞에서 거행한 영결식에서 조사(弔詞)를 4·19민주혁명회 문승주 명예회장이 낭독했습니다. 

박종구 현직 회장은 강추위에 고령과 건강문제가 겹쳐 부득이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이어 박기철 사무총장이 고인의 약력을, 문동근 국장이 4·19 비문(碑文)을 낭독했습니다.

헌화와 분향은 유족을 시작으로, 4·19혁명희생자유족회 정중섭 회장, 4·19민주혁명회 김갑숙 전(前) 회원국장을 비롯한 회원 들이 나서서 고인을 추도하고 명복을 빌었습니다. 

고인은 1940년 경기도 평택시 청북면에서 출생했으며 4·19혁명 당시 중앙대학교 학생으로 자유당 독재정권을 규탄하는 시위 도중 중앙청 앞에서 경찰 발포로 왼쪽 머리 부위에 총상을 입고 장기간 치료를 받았습니다.

고인은 중앙대 중퇴 뒤 성균관대학교에서 유교학을 배웠으며, 2004년 4·19혁명 공로로 건국포장을 받았습니다. 

안장식은 그러나 영결식에 이어 바로 거행하지 못하고 오후로 미뤄졌습니다.

며칠째 계속된 한파로 4묘역 땅이 깊이 1m 가까이 언데다 포크레인으로 이른 아침부터 3시간 넘게 꽝꽝 언 땅을 무리하게 파다가 굴착장비가 고장났습니다. 

급하게 다른 포크레인을 수배하고 유족의 동의를 받아 안장식을 점심식사 이후로 연기했습니다.

오후 1시쯤 거행된 안장식에는 유족, 천주교 교인과 국립4·19민주묘지 직원 등 30여명이 참석했습니다.

먼저 하관(下棺)하고, 사제가 성수를 뿌리고 장례미사를 올리고, 유족이 허토하고, 다함께 묵념하며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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