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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 |
엄마
엄마는 취미가 뭐였을까? 영화? 내 기억에 우리 남매가 강릉에 사는 동안 가장 가까운 학교로 전근 온 곳이 주문진에서 산 쪽으로 한 시간을 걸어 들어가야 하는 학교로 기억 나. 여름방학 때도 교감이라는 직책 때문에 근무를 해야 했고 철없는 나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반 아이들을 몇 명 데리고 엄마 학교에 갔던 기억이 나. 근데 엄마 학교가 어떻게 생겼는지 엄마가 뭘 아이들에게 먹여 돌려보냈는지 기억에 없는데 주문진 버스에서 내려 장난치며 학교로 걸어 간 기억은 나. 기억이 사라진 이유는 모르겠어. 그 학교를 다니며 엄마가 출퇴근을 집에서 했는지 주말에만 집에 왔는지 확실치 않지만 엄마가 토요일에 하는 주말명화를 자주 봤던 기억이 나. 어느 날은 엄마가 주말명화를 보는데 내가 엄마 무릎을 베고 누워서 배가 아프다고 하니까 엄마가 영화를 보면서 내 배를 쓰다듬으며 ‘내 손이 약속이다’라고 했던 기억이 나. 엄마 취미가 영화 관람인가? 하지만 엄마는 내 기억에 딱히 영화를 즐겨 봐서 영화관에 간 적이 없으니 영화는 아닌 것 같아. 엄마가 도계 학교로 발령이 나서 우리 가족 모두 그 곳에서 일 년 남짓 살았었지. 그 때 나는 여섯 살 때라 이 기억이라 맞는지 아닌지 긴가민가 한데 엄마 손에 이끌려 어느 가정집에 갔던 기억이 나. 아줌마들이 괘 많았고 남자 어른도 몇 명 있었어. 집 주인이 커피를 손님들에게 대접하며 내게는 코코아를 줘서 처음으로 코코아라는 걸 맛봤지. 그리고는 전축에서 음악이 흘러나왔고 남.녀 한 쌍이 가운데로 나와서 춤을 추는 걸 봤어. 그 날 엄마도 춤을 췄는지 기억은 없지만 어린 내게는 조금은 충격이었지. 엄마 취미가 춤추는 건 아닐까? 그 기억 말고 엄마가 춤을 추는 걸 본 적이 없으니 춤도 취미는 아닌 것 같아. 노래는 엄마가 자신이 없어 교사들 회식 자리를 위해 최진희 ‘사랑의 미로’ 가사를 쪽지에 써서 외워서 겨우 부르는 수준이라 노래하는 것도 듣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아. 여행? 사람들과 우르르 몰려 다니는 여행은 엄마도 다녔지만 여행을 취미로 삼을 만큼 여유도 없었고 즐기지도 않았던 것 같아. 그럼 엄마 취미는 뭐지? 육이오 때 학도병으로 우리 군의 정보 수집병으로 자원해서 북의 원산을 친구들과 가서 우여곡절을 겪고 일 사 후퇴 때 우리 군의 일원으로 미군 함정을 타고 남쪽으로 내려와 피난 가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만났는 이야기를 듣고는 엄마의 소녀적 꿈은 모험을 좋아하는 아이라는 생각을 했어. 요즘 시대를 살았으면 엄마는 당찬 모험을 취미로 즐겼을 수 있겠다. 싶어. 하지만 내가 모르는 전쟁의 혼란 속에서 어쩌면 엄마는 군에 자원해야 하는 상황과 당참이 있어야 했는지 몰라서 모험이 취미라고 여기기도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럼 진짜 엄마 취미는 뭐였을까> 생각해 보면 엄마가 살았던 시대는 나라 자체가 가난을 두 어깨에 짊어지고 힘겹게 생존해야 하는 때였어. 우리 식구들은 그나마 외할아버지가 딸도 교육을 시켜서 엄마는 교사라는 직업을 업으로 삼아 배를 곯는 일은 없었어. 그래도 지금처럼 교사라는 직업이 그 당시는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는 않았어. 그러니 취미는 사치였지. 하지만 우리집도 내가 다쳐서 식구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았다면 식구들 모두가 지금보다는 나은 삶을 살았을 거야. 엄마도 아마 이모들처럼 취미를 하나 갖고서 곱게 나이 들고 억척같다는 소리는 듣지 않았을 거야. 다 내 탓 같아. 미안해. 엄마, 기일 날 또 못 갔어. 나 죽기 전에 엄마한테 가 볼 수 있을까? 싶다. 그래도 올 해는 호국원 직원들이 예쁜 꽃을 엄마한테 드리는 사진을 내게 보내주셔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 엄마, 다음 생은 나 같은 아들 낳지 마. 그래도 내 꿈에는 가끔 와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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