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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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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 이회영 선생 순국 90주기 추모식』추모사
『우당 이회영 선생 순국 90주기 추모식』추모사
<2022. 11. 17.(목) 14:00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

안녕하십니까. 국가보훈처장 박민식입니다.

오늘 우리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상이신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 순국 90주기를 맞아 
이 자리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신명을 바치신 이회영 선생께
무한한 존경의 마음을 바치며, 삼가 머리 숙여 명복을 빕니다.

오늘 뜻깊은 추모식 준비에 애써주신 
우당이회영선생기념사업회 <이종걸> 회장님, 
후손대표로 참석하신 우당교육문화재단 <이종찬> 이사장님,
그리고 관계자 여러분께 큰 감사를 드립니다.

선생께서는 9대가 정승‧판서‧참판을 지낸 명문가의 자손으로
유복하고 편안한 삶을 영위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선생께서는 고귀한 영예도, 막대한 부도
조국과 겨레가 없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고 믿었습니다.

경술국치로 국권을 빼앗기자, 선생을 비롯한 여섯 형제는 전 재산을 팔아 독립자금을 마련하여 50여 명의 식솔과 함께 만주로 떠났습니다.

당시 여섯 형제가 독립운동 자금으로 내놓은 재산은 쌀 6천 석으로,
오늘날 약 6백억 원에 달하는 거금이었습니다.

이는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가문 차원의 헌신으로,
오늘날까지 사회지도층으로서 도덕적 책무를 다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선생께서는 위태롭고 어지러운 나라의 운명을 돌려
민족천년의 대계를 바로 잡으려는 큰 뜻을 세우시고,
‘서전서숙’, ‘상동청년학원’ 등을 설립하여
민족의 동량을 길러내고 독립운동 인재를 양성하셨습니다.

특히, 1912년 만주에 설립한 ‘신흥무관학교’는 
무려 2천여 명의 독립군을 배출하며
청산리 전투 승리의 산실이자 항일무장투쟁의 주춧돌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선생께서는 1932년 만주 일본군 사령관 처단 작전을 위해
다렌으로 이동 중에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 끝에 65세의 나이로 순국하셨습니다.

정부는 선생의 위대한 공적과 헌신을 기리기 위해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습니다.

조국과 겨레를 위해 부귀영화를 던지고 모진 고초를 감내하신 
이회영 선생의 생애는 9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명문세가의 후손이었으나 위에서 군림하지 않고 가장 아래에서 헌신하셨고, 일제 치하에서 부유한 집안으로 살기보다,
독립투쟁의 험로를 걸으며 가장 가난한 삶을 살기를 택했습니다.

이러한 이회영 선생과 같은 분들의 고귀한 희생이 결실을 맺어 
대한민국은 주권을 잃고 세계에 이름을 내세울 수 없었던 시절을 극복하고,
이제는 세계의 발전방향을 제시하는 나라,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우리는 이회영 선생을 비롯한 수많은 애국선열들의 피와 땀 위에 
오늘의 자유롭고 번영된 대한민국이 서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이 자리가 선생의 의로운 삶과 숭고한 정신을 깊이 새기고 
더욱 번영된 대한민국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정부도 조국을 위해 헌신한 이회영 선생과 같은 애국선열들을 
예우하고, 그 숭고한 정신을 미래 세대에게 계승하며, 
이를 통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바로세울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조국독립을 위한 숭고한 삶을 사신 이회영 선생님께 
한없는 존경과 추모의 마음을 바치며, 평안한 안식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끝)

2022. 11. 17.
국가보훈처장 박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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