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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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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기 선생 2017년 9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
작성자 : 이동률 작성일 : 조회 : 2,257
부서 공훈관리과
연락처 044-202-5771

만주와 중국 대륙을 누비며 활약한 광복군  고운기(본명 : 공진원) 선생 2017년 9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


□ 국가보훈처(처장 피우진)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고운기1)(高雲起, 본명: 공진원, 1907~1943) 선생을 2017년 9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고 밝혔다.


  ○ 선생은 함경남도 문천 출생이며, 그의 부친 공창준은 을사늑약 직후 홍범도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함경도 각지에서 일본군과 맞서 무장투쟁을 전개한 인물이었다.
  ○ 1931년 한국독립군 제6중대장으로 중국의 반만항일군과 연합하여 대일항전을 전개하였으며 1932년 서란현전투에서 일본군 1개 분대를 전멸시키는 전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 1933년 선생은 중국 관내로 이동하여 1934년 2월 낙양군관학교 한인특별반에 입교하여 훈련을 받고 1935년 4월 졸업하였으며, 1937년 지청천을 중심으로 결성된 조선혁명당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 1937년 7월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조선혁명당은 김구가 주도하는 한국국민당, 홍진·조소앙이 주도하는 한국독립당(재건)과 연합하여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를 결성하였고, 이를 계기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관계를 맺게 되었다.
  ○ 1938년 유주에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 대장으로서 선전활동을 통해 중국인들에게 항일의식을 고취시키고, 항일투쟁의 대열로 참여시켰다. 1940년 충칭에서 광복군이 창설되자 제2지대장에 임명되었고, 시안으로 이동하여 병력을 모집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징모 제2분처의 책임자로써 한인 청년들을 모집하였다.
  ○ 1942년 충칭으로 다시 돌아온 선생은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하며 광복군의 자율적인 활동을 제한하던 ‘한국광복군행동9개준승’을 취소시키는 작업을 추진하다가 병을 얻어 1943년 3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정부는 1963년 고운기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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