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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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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의 독립운동가 선정 춘천의병장 이소응 선생
작성자 : 강병구 작성일 : 조회 : 1,463
부서 공훈심사과
연락처 044-202-5451

 2017년 1월의 독립운동가 선정 춘천의병장 이소응 선생


□ 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춘천의병장 습재 이소응(李昭應, 1852~1930) 선생을 2017년 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고 밝혔다.

□ 선생은 1852년 강원도 춘천 출신으로 자는 경기(敬器), 호는 습재(習齋) 또는 사정거사(思靖居士)이며, 후에 의신(宜愼), 직신(直愼)으로 개명하였다. 본관은 전주로, 조선 제14대 왕 선조의 별자(別子)인 경창군(慶昌君) 주의 후손이다.

□ 선생은 1872년 22세 때 화서 이항로의 제자인 유중교의 문하에 들어가 일생을 화서학파 선배인 의암 유인석과 항일투쟁에 매진하였다. 조선이 1876년 일제에 의해 강제로 개항되자 면암 최익현 등 화서학파 유생들과 반대 상소를 올려 일제의 침략성을 규탄하였다.

□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단발령을 계기로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나자, 선생은 유인석의 권유로 의병 대열에 동참하여 1896년 춘천의병장에 추대되었다. 춘천의병진에는 전직 관료와 재야 유생을 비롯하여 군인, 보부상, 농민 등 다양한 계층이 참여하였다. 선생은 의병진의 전열을 재정비하고 군량과 무기를 확보하는 한편, 효고팔도열읍(曉告八道列邑)이란 격문을 지어 의병을 일으킨 목적과 정당성을 천명하고 백성들의 참여와 원조를 독려하였다.

□ 춘천의병은 관찰사로 부임한 친일 관료를 처단하고 서울로 진격하고자 하였으나 경기도 가평에서 패전하여 퇴각하고 말았다. 이후 선생은 제천 유인석 의진에 입진하고, 이들과 함께 1898년 서간도로 망명하였다.

□ 망명지에서 항일의지를 다지던 선생은 1900년 의화단 난을 계기로 유인석과 함께 귀국한 뒤 후학 양성과 제천의 자양영당(紫陽影堂) 건립 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경술국치 후 일제의 핍박이 극심해지자 1911년 서간도로 다시 망명하였다. 철저하게 수의(守義) 생활을 고수하던 선생은 심양 외각 강평현(康平縣)에서 79세를 일기로 타계하였다.

□ 선생은 화서학파의 항일사상을 실천에 옮긴 학자이자, 나라의 자주성을 지키기 위해 힘쓴 독립운동가였다. 선생의 유해는 1934년 제천으로 옮겨져 안장되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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