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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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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고히 잠드소서
작성자 : 고재덕 작성일 : 조회 : 3,482
-아버지 고히 잠드소서-경우신문(www.ex-police.co.kr 2003.4.1. 4면)



52년간 소쩍새가 그토록 울어댔는데도,

오시지 않는걸 보니,

아버지께선 정녕 가신 걸까요 ?



그래도 행여나

납북자명단, 이산가족명단을 뚫어지게 봤건만

아버지의 성함은 없고 그리움만 끓어오릅니다.



조국은 무엇이고

자유가 무엇이기에

사랑스런 아내와 자식을 놔두고

한밤중에 고수면 문수사 깊은 골짜기에서

무장공비 소탕전에 고귀한 목숨을 산화했단 말입니까 ?



아버지께서 그토록 미워하셨던 빨갱이도

서로 싸웠던 사상도, 이념도

이제는 민족앞에 한동지가 된다니,

너무 어리둥절 하네요.



그리운 아버지여!

행복했던 아버지와의 삶도 불과 8년만에 헤어지고,

한 많는 어머니 마저 세상을 떠나신지 10년....

저승에서 만나, 푸념스런 원망을 받으셨지요 ?



하느님 ! 불쌍한 아버지의 영혼을 맡아 주세요.

아버지 고히 잠드소서.

아버지,

자손들을 돌보아 주소서.

이 조국을 지켜 주소서.



고수 황산벌을 쩡쩡 울렸던 행진곡이 기억납니다.



"건설은 천년을 끓어 나온

용감한 천사는 지금 여기서

힘차게 싸운다

막달리는 그용사

씩씩하다 특공 특공 특공

금수강산의 무궁화

송이 송이 울리며

야 야 고수 고수 우리들은 특공대"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고 했거늘 조국의 산하가 피빛으로 물들어 가는 풍전등화같은 숨막힌 순간에 아버지께서 귀하신 목숨을 바치신지 52년이 흘렸으니, 강산이 다섯번이나 변한 샘입니다.



1951년 초, 인민군이 남침후, 유엔군의 인천 상륙 작전으로 군수공급이 차단되자, 인민군과 공비는 최후의 발악을 했습니다. 당시 고수지서는 흙담 울타리를 경계로 도로변의 한옥집이 었습니다. 밤중에 공비가 내려와 지서를 불태워 버렸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고창경찰서 사찰계(오늘날 형사 계) 소속이었는데 지서방화범 소탕에 해결사(?)로, 즉 비전투요원에서 전투요원으로 차출되었습니다.



간밤에 꽃가마 타고 새색씨한테 장가간 꿈을 꾸었기에 동료들이 극구 만류했는데도, 애국심과 사명감때문에 심야에 특공대원을 인솔하고 고수 문수사 근방에 출전하여, 방장산의 공비를 유인하여 숯가마속에서 협상을 하던 중 포위한 아군의 견장이 달빛에 반짝거리자, 공비들이 "우리들은 포위당했다. 협상이고 뭐고 집어 치우고 튀자." 소리치자 피아군간에 꽁볶듯이 교전이 벌어졌습니다. 상황 종결후 인명피해를 확인한 결과 정작 특공대장인 아버지께서 전사한 것입니다. 이때가 바로 1951년 음 2월 13일, 양력 3월15일입니다.



차겁고,깜깜한 산계곡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실때, 가족에게 무슨 유언을 남기셨을가 ? 싸늘한 밤하늘의 별만이 알겠지만, 아마도 "자식들아 ! 사욕을 버리고 의롭게 살아야 한다." 단 한마디였으리라. 새는 죽을 때 목소리가 맑고 사람은 진실을 말한다 했거늘 이 이상 진실이 없을 것입니다. 면장님의 호의로 고수面長葬을 치른후 흥덕의 고향선산에 모셨을때, 어린 생각으로, 죽음이 무엇인지 몰라도 그 비통함이란 하늘이 무너진 것 같았습니다. 그때 아버지 나이 28세, 부자 유친 불과 8년이니, 인생치고 너무나 짧고,무상했습니다.



가신님께서 뿌린 씨앗은 무성히 잘 되건만, 思父曲은 해가 갈수록 더 애통스럽고, 혈육의 정은 더 그리워 집니다. 아버지께서 남기신 공로가 너무 궁금하기에 경찰청, 국가보훈처,전쟁기념관,국방부국사편찬위원회를 10년간 뒤졌건만 기록은 없었고, 당시 싸웠던 동지라도 오랫동안 수소문했던바, 현 고창 경우회 회장인 안세환씨를 운좋게 찾았습니다. 공적은 들려 주셔서 고마웠지만 함께 찍은 사진은 없어 아쉬었습니다.



숙부님의 주장으로 88년 여름, 고향선산에서 대전국립묘지 경찰묘역에 안장(묘비명: 83. 高光烈)해 드렸습니다. 이제 어머니도 옆에 계시니 객사의 한을 풀으시고 혼백일랑 구천을 헤매지 마시고 영원히 안주하시길 기원합니다.



4년전 고수 지서장님의 도움으로 돌아가신 현장을 찾아 국화꽃다발을 겨우 헌화했습니다. 늦은 방문의 불효를 용서하십시요.

아버지, 기일을 맞이하여 삼가 명복을 빕니다.



이글을 읽으시는 독자중 아버지와 동지이셨거나 무용담을 아시는 분께서는 연락(019-288-8236)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2003. 3. 10.

서울 강남구 삼성동 97 씨티빌라 A-1101호

고재덕 헨드폰: 019-288-8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