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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행사

국가보훈부(국문) - 독립기념행사 상세보기 - 행사명, 행사목적, 행사일, 시간, 장소, 주최, 주관, 참석인원, 행사내용, 식순, 주요참석자, 성명, 생년월일, 주요공적, 서훈, 특이사항, 파일 정보 제공
행사명 단재 신채호 선생 순국 81주기 추모기념행사
행사목적 대일 항쟁기 언론인, 사학자로서 민족의식 고취에 힘쓴 독립운동가 신채호 선생을 기리는 행사
행사일 2017-02-21
시간 10:30
장소 단재 신채호 선생 사당 및 묘정
주최
주관 (사)단재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
참석인원 각계인사와 독립운동 관련 단체 대표 및 회원, 유족, 시민 등 200여명
행사내용 <p><br></p>
식순 &lt 1부 추모제&gt &lt 2부 추모식&gt 개회 선언 /국민의례 및 내빈 소개/ 단재 약력소개 및 어록낭독 / 헌사/ 추모사 / 헌화 및 분향 / 폐회
주요참석자 김이주 충북남부보훈지청장, 이시종 충북도지사, 이승훈 청주시장, 윤주경 독립기념관장 등
성명 신채호
생년월일
주요공적 신채호 선생(1880. 12. 8.~1936. 2. 21.)은 충청도 회덕현 산내면 어남리(現 대전 중구 어남동)에서 출생하였다. 어릴 적 유교학문 수양에 힘썼으나, 1898년 성균관에 입학한 후 개화사상을 접하고 ‘독립협회’에 가입하여 적극 활동하였다. 1905년 4월에 성균관 박사가 되었으나 바로 사직하였다. 그 해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관직 진출을 포기하고 《황성신문》에 논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후, 양기탁의 요청으로 《대한매일신보》의 주필로 활약하며 일제의 침략과 친일파의 매국행위를 비판하고 국권회복에 민족이 힘쓸 것을 역설하였다. 1907년 안창호, 이갑 등과 더불어 비밀결사 ‘신민회’의 창립에 참가하여 신민회의 이념을 논설에 반영하는 등 대변인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였다. 선생은 그 해 대구를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전개된 ‘국채보상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였고, 《기호흥학회월보》, 《대한협회회보》등 언론을 통한 애국계몽운동에 주력하였다. 뿐만 아니라, 《독사신론》을 비롯한 많은
서훈 대통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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