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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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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북파공작원 음지의 인생에 해뜰날 왔다.
작성자 : 김정식 작성일 : 조회 : 2,512
음지의 인생에 해뜰날 왔다. 북파 공작원 김정식씨


조국을 위해 음지에서 싸웠던 김정식(56)씨는 팔과 옆구리에 관통상을 입었지만 기적처럼 살아남아 1969년 12월31일에 ‘제대’했다. 계급장도 없이 지독한 훈련을 받고 북한군 복장으로 8차례나 남북을 넘나들었던 그였지만, 자신이 육군 정보사령부 소속의 군인이었다는 것은 전역식에서 충무무공훈장을 받고서야 알았다. 세상은 나라를 위해 헌신하다 부상을 입은 ‘국가 유공자’인 그를 대접하기는커녕 강력사건만 터지면 용의자로 몰기 일쑤였다.

사선을 넘나든 대가로 30여년의 세월을 ‘어둠의 자식’처럼 보냈다. ‘과거’를 악몽처럼 기억하는 그와 동료들이 본격적으로 ‘양지’에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은 <한겨레21>이 제269호(1999년 8월5일치)에서 표지이야기로 “북파간첩 7726명이 사라졌다”고 밝히면서부터다. 당시 군 정보사령부 고위관계자가 “실종 공작원마다 관련 파일이 있으며 이를 보관하고 있다”고 밝혀 해방 뒤 꾸준히 진행된 ‘북파공작’의 실체가 일부나마 드러났던 것이다. 이를 계기로 대북 특수임무를 수행했던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당시 <한겨레21>은 북파공작원들의 실체를 드러냈지만 생존자들을 만나지는 못했다. 워낙 피해의식이 컸던 생존자들은 공개적으로 자신들의 활동을 말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생존자들의 활동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부상을 입은 전우들 상당수가 보훈병원에서 만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난 사람들과 함께 주축이 되어 군 당국에 자신들께 예우와 보상할 것을 강력하게 호소했다.

김씨는 97년 우연히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 들렀다가 ‘대침투전 전사자 명단’에서 ‘목장’(훈련소 입구의 대한축산연구소라는 푯말에서 유래)이라 불리던 훈련소 동기생과 후배들의 이름을 발견했다. 이를 계기로 전우들을 본격적으로 찾아 나섰다.

그렇게 만난 사람들이 지난해 6월 ‘대한민국 첩보요원 총연합회’(현재는 대한민국 특수임무수행자 총회)를 결성했고 김씨가 회장을 맡았다. 지난 1월8일은 이들에게 특별한 날이다. 김성호 의원(열린우리당)이 발의한 ‘특수임무수행자 보상·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돼 비로소 과거를 ‘인정’받게 됐기 때문이다. “4403명이 해당되는데 지금까지 3981명이 신청했습니다. 나머지 400여명은 연락 두절입니다. 그 중 상당수는 자살했거나 폐인이 됐습니다. 우리의 전우들이 그렇게 죽어갔습니다.”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