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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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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재야록을 저술한 조희제 선생 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
작성자 : 강병구 작성일 : 조회 : 1,676
부서 공훈심사과
연락처 044-202-5451

 염재야록을 저술한 조희제 선생 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

 ◈ 항일 의병과 애국지사들의 절의실적을 기록 ◈


□ 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염재야록을 저술한 조희제<趙熙濟, 1873 ~ 1939> 선생을 2016년 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고 밝혔다.


□ 선생은 전북 임실 출신으로 항일의식이 투철한 집안에서 자랐으며, 일제에 맞서 목숨을 끊은 송병선과 항일투쟁에 나섰던 기우만 의병장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았다. 


□ 선생은 수십 년에 걸쳐 각지를 돌아다니며 독립투사들의 항일사적과 애국지사들의 행적 등 항일투쟁 기록을 모았다. 또한, 법정에서 애국지사들의 재판 과정을 방청하며 기록하기도 하였다. 명성을 떨치고 그 행적이 역사에 잘 기록된 인사보다는 초야에 묻힌 애국지사들의 충절을 기록했다. 선생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책의 표지에 덕촌수록이라고 이름을 붙인 후 1질은 책상 위에 두고, 1질은 궤짝에 넣어 마루 밑에 묻었다. 


□ 그러나 염재야록 편찬 사실이 1938년 일제 경찰에 발각되면서 서문을 썼던 최병심, 발문을 썼던 이병은, 교정을 보았던 김영한 등과 함께 선생은 임실경찰서로 연행되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선생의 글은 물론이고 집안 대대로 간직해온 다양한 자료들이 모두 압수되었다. 


□ 임실경찰서에 연행되어 거의 목숨이 끊어질 정도로 혹독한 고문을 당한 후 집으로 돌아왔으나 울분을 참지 못하다가 일제의 단발 종용에 결국 자결 순국하였다. 다행히도 마루 밑에 보관해 두었던 덕촌수록을 해방 후 선생의 제자인 조현수가 염재야록으로 간행하여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 염재야록은 당시 의병운동사와 독립운동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사료적 가치가 높다. 정부는 항일 의병과 애국지사들의 행적을 목숨 걸고 기록한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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