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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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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만세운동을 주도한 대동단의 여성대표 이신애 선생 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
작성자 : 강병구 작성일 : 조회 : 1,569
부서 공훈심사과
연락처 044-202-5451

 제2의 만세운동을 주도한 대동단의 여성대표 이신애 선생 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


□ 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대동단의 여성대표로 제2 만세운동을 이끈 이신애 선생을 2016년 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고 밝혔다.

  ○ 선생은 평안북도 구성에서 무남독녀로 태어나 부친을 일찍 여의고 홀어머니를 따라 원산으로 이주하였다. 이후 개성 호수돈여학교에 진학하였으나 어려운 가정형편과 건강 악화로 학교를 중퇴하였다.


  ○ 1914년 성경여학교에서 공부한 후 1918년 루씨여학교 두산리분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이 무렵 부흥회에서 손정도 목사의 설교에 깊은 감명을 받아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 선생은 1919년 5월부터 혈성부인회에 가담하여 상해 임시정부로 보낼 군자금을 모집하였으며, 1919년 9월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齋藤實)를 처단하기 위해 서울로 들어온 강우규를 은닉해 주고 군자금을 모집해 의거에 필요한 물품을 지원하였다.


  ○ 또한, 1919년 9월 초 조선민족대동단에 가입하여 부인단 총대에 선출되었다. 당시 대동단은 1919년 10월 조직 본부를 상해로 옮기기 위해 의친왕 이강을 중국으로 망명시키고자 하였다. 


  ○ 아울러 대동단은 상해 임시정부의 특파원 이종욱 등과 연계해 제2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만세운동을 벌일 계획이었다. 그러나 11월 11일 상해로 향하던 의친왕 일행이 만주 안동역(오늘날 단동역)에서 체포되면서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 일제 경찰의 체포망에서 벗어난 선생과 나창헌 등은 만세운동을 다시 추진하였다. 독립선언서를 인쇄하여 의친왕 이강과 여성대표 이신애 등 3·1운동 때와 같은 33명의 독립운동가가 서명하였다. 


  ○ 11월 28일 오후 5시 경 선생은 동료들과 함께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안국동 경찰관 주재소 앞 광장에서 독립선언서를 뿌리고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운동을 벌였다. 


  ○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선생은 1920년 3월 1일 서대문형무소 같은 동에 있던 유관순 등과 3·1운동 1주년을 맞아 옥중에서 만세를 부르다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심한 고문을 당하였다. 


  ○ 정부는 대동단의 여성대표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선생의 공적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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