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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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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경찰서 폭탄 투척으로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한 최수봉 의사 1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
작성자 : 강병구 작성일 : 조회 : 1,319
부서 공훈심사과
연락처 044-202-5451

밀양경찰서 폭탄 투척으로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한 최수봉 의사 1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


□ 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식민통치 폭압기관인 밀양경찰서에 의열의 폭탄을 던지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최수봉(崔壽鳳, 1894~1921) 의사를 2016년 1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고 밝혔다.


□ 선생은 1894년 경남 밀양의 빈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향리의 개량서당을 다니면서 한문과 유교적 가르침을 익히고 신지식도 섭렵하였다. 


□ 선생은 약산 김원봉과 함께 밀양공보를 다니던 중 단군이 일본 대화족(大和族) 시조의 아우라고 주장한 일본인 교사에게 항의했다는 이유로 퇴학당하였다. 


□ 선생은 1910년 동화(同和)학교에 편입하여 김대지 등 독립운동가의 가르침을 받으며 조국애와 항일의식을 키워갔다. 1912년 범어사에서 운영하던 부산 명정학교와 1913년 기독교 계통의 평양 숭실학교를 다니기도 하였다.


□ 1916년 평안도에서 광부와 우편배달부 생활을 한 후 독립운동의 주요 거점인 봉천(오늘날 선양)과 안동(오늘날 단둥)을 왕래하며 동지를 규합하였다.

 

□ 1920년 의열단이 국내 일제기관 총공격거사 계획을 세우고 폭탄을 밀반입하려다 일제 경찰에 적발되어 여러 단원들이 체포되자 선생은 이종암 등과 식민통치의 폭압기관에 폭탄을 투척하기로 하였다. 


□ 1920년 12월 27일 월요일 아침 경찰서장이 연말연시 특별경계를 당부하는 훈시를 하던 틈을 타 밀양경찰서에 폭탄을 던져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다.


□ 선생에 대한 재판은 상고심까지 진행되었으나 일제는 의거의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재판을 속전속결로 진행하였고, 확정판결 한 달 보름 만에 대구감옥에서 사형을 집행하였다.


□ 선생의 의거는 항일 민심과 독립운동 진영을 고무시켜 이후 김익상의 조선총독부 투탄으로 이어졌다. 정부는 선생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기리어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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