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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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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의 독립운동가 김규면 선생 공훈내용
부서 공훈관리과

중국과 러시아를 누비며 무장투쟁 한 대한신민단 단장

2018년 2월의 독립운동가로 김규면 선생 선정

 

국가보훈처(처장 피우진)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김규면 (金圭冕, 1880. 3. 12.~1969. 2. 2.) 선생을 2018년 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고 밝혔다.

 

일제의 차별, 좌절된 청년 무관의 꿈

1880년 함경북도 경흥에서 태어난 선생은 시대의 전환기인 20세기 초 대한제국이 운영하는 육군무관학교 속성과에 입학했다. 1904년 일본은 강제로 체결한 한일의정서에 근거하여 육군무관학교를 통제했다. 그리고 러시아를 통해서 일본의 영향력을 제거하려는 함경도 출신 학생들을 차별했다. 무관이 되어 조국 부강을 염원했던 선생의 꿈은 일제에 의해 좌절되고 말았다.

 

조선총독부 종교탄압에 반발, 민족교회인 대한성리교 설립

1905~6년경 기독교인이 되었다. 선생이 기독교에 입교한 것은 기독교로 대표되는 서구문명을 통해서 무너져 가는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서였다.

1907년 훈춘(琿春)으로 망명한 선생은 민족종교 단체인 대한성리교(大韓聖理敎)를 만들었다. 조선총독부가 1915년에 포교규칙(布敎規則)을 공포하자, 이에 반발하며 항일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만들었던 것이다.

 

3 · 1운동에 호응하여 독립군 단체인 대한신민단 조직

스스로 무관이 되지는 못했지만, 청년들을 독립전사로 양성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대표적인 것으로 1914년 이동휘와 함께 중국에서 설립한 동림무관학교를 들 수 있다.

독립전쟁을 통해서 독립을 달성하려는 선생의 노력은 대한신민단(大韓新民團) 결성으로 이어졌다. 3 · 1운동에 호응하여 결성된 대한신민단에서 단장으로 활동했으며, 여기서 보여준 그의 헌신은 1920년 봉오동과 청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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