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보도자료

국가보훈부(국문) - 보도자료 상세보기 - 제목, 작성자, 부서, 작성일, 조회수, 연락처, 내용, 보도 일시, 종료일, 파일 정보 제공
3월의 독립운동가 박인호 선생
작성자 : 강병구 작성일 : 조회 : 1,697
부서 공훈심사과
연락처 044-202-5451

 3월의 독립운동가 박인호 선생

 ◈ 3월 24일(火) 천도교 중앙대교당에서 학술강연회 개최 ◈


□ 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광복회·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3·1운동을 배후에서 이끈 박인호(朴寅浩, 1855~1940, 건국훈장 독립장) 선생을 3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고 밝혔다.


□ 1854.12.25. 충남 예산에서 태어난 선생은 1883년 동학에 입도하여 1894년 제2차 동학농민운동을 이끌었으며, 1904년 진보회를 조직하여 갑진개화운동을 전개하였다.


□ 1908년 천도교 4세 대도주에 임명된 후 보성학교와 동덕여학교 등을 설립하여 민족의식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였다. 이후 동 학교 출신들은 3·1운동과 6·10만세운동의 주역으로 크게 활약하였다.


□ 선생은 1919년 천도교 전국 대교구에 등사인쇄기를 배치토록 해 독립선언서 제작을 지원하였으며, 천도교 대교당 건축 명목으로 특별 성미를 거두어 3·1운동자금으로 사용케 하였다. 3·1운동을 전국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조선독립신문을 발간하는 등 배후에서 만세운동을 지휘하다 일제로부터 기소되어 1년 9개월 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도 상해와 북경의 천도교 전교실을 통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제공하였다.


□ 선생은 1926년 6·10만세운동 때 격고문과 전단 등 5만 매를 배포토록 하였으며, 1927년에는 천도교 출신 청년과 교인들이 전국 신간회에서 활동하도록 지시하였다. 1936년 지방에서 상경한 천도교 지도자들에게 일제의 패망을 재촉하는 기도를 올린 것이 밝혀져 1938년 일제로부터 조사를 받기도 하였다. 정부는 선생의 공적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국가보훈처는 3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선생의 공훈을 기리고자 3월 24일(화) 서울 천도교 중앙대교당에서 학술강연회를 개최하고, 3월 한 달 간 천안 독립기념관과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선생의 생애와 독립운동 활동을 담은 기획사진을 전시한다.

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