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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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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6·25 전쟁영웅 박동진 해군 일등병조
작성자 : 최기찬 작성일 : 조회 : 1,740
부서 제대군인정책과
연락처 044-202-5719

 8월의 6·25 전쟁영웅 박동진 해군 일등병조 

 ◈ 인천상륙작전의 교두보를 확보하라! ◈


□ 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박동진’ 해군 일등병조(*현재 중사)를 8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하였다고 밝혔다. 

 - 1950년 8월 계속해서 남침하던 북한군은 연안 가까이에 있는 일부 도서를  점령하여 무고한 주민을 학살하고, 아군 함정의 동정을 감시하는 거점으로 활용하였다. 이에 해군은 인천 상륙에 필요한 정보수집과 교두보 확보를 위해 각  함정의 승조원들로 구성된 상륙부대(육전대)를 편성, 「덕적도와 영흥도 탈환 작전」을 전개하였다. 


 - 특히, 덕적도의 위치가 인천항 입구를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에 인천 상륙에 있어 전략상 덕적도를 먼저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요건이었다. 


 - 1950년 8월 18일, 아군의 함포지원을 받으며 덕적도에 성공적으로 상륙한  해군 육전대 1소대 1분대장 ‘박동진’은 산악고지로 도주하던 적을 격파하고 덕적도를 점령하는 데 성공하였다. 뒤이어 8월 20일 새벽, 육전대는 다음 목표인 영흥도 탈환작전을 전개하였다. 


 - 앞서, 덕적도를 빼앗긴 적군은 격렬히 저항하였으나 ‘박동진’을 비롯한 해군육전대는 국군 포로 4명을 구출하고 적을 맹렬히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 해군에게 있어 영흥도 탈환은 이후의 인천상륙작전을 위해서 절대로 물러설 수 없는 지상과제였다. 적을 추격하던 중, 은신처를 발견한 분대장 ‘박동진’은 부하들의 전진을 중지시킨 후, 수류탄과 함께 엄호사격을 받으며 단독으로 돌진하였다. 첫 번째 수류탄에 이어 두 번째 수류탄을 투척한 순간, 적 탄환이 ‘박동진’의 가슴을 관통하였다. 분대장이 쓰러지자 이삼재 부분대장이 분대장을 대신해 또다시 수류탄을 잡고 나아갔다. 


 - 얼마 후, 적의 집중 사격으로 부분대장마저 쓰러지자 전 분대원들은 일제히  적진으로 돌격하였고 해군은 영흥도를 완전히 탈환할 수 있게 되었다. 영흥도탈환은 이어 전개된 인천상륙작전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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