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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서 김홍일 장군 서거 40주기 추도식 추모사

일서 김홍일 장군 서거 40주기 추도식 추모사




오늘 우리는 일서 김홍일 장군님의 서거 40주기를 엄숙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맞습니다.


먼저, 일생을 조국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셨던 장군님께 깊은 경의를 표하며, 머리 숙여 명복을 빕니다.


또한, 자리에 함께 하신 유가족 여러분께도 진심어린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장군님께서는 질곡(桎梏)의 역사였던 지난 세기에 전 생애를 일관되게 대한민국의 독립과 호국, 민주를 아우르는, 우리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의로운 삶을 사셨던 분이십니다.


신지식과 민족의식을 바탕으로 후진 양성에 힘을 쏟으셨으며, 독립운동에 뜻을 두고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군과 독립군에서 대일항쟁을 전개하셨습니다.


특히, 중국 상하이 병공창의 병기창 주임으로 계시며 이봉창 의사의 의거를 위한 폭탄을 제조하는데 크게 기여하셨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이에 머물지 않고 이봉창 의사의 거사를 통해 보다 가벼우면서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 도시락 폭탄과 물통형 폭탄 제조에 심혈을 기울여 윤봉길 의사 상해 의거의 단초를 제공하셨습니다.


윤봉길 의사의 의거는 침체기에 빠져있던 독립운동에 활기를 불어 넣었고,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중국 국민당의 지원을 받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구보다 굳은 의지로 독립운동을 지원하신 장군님이 계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이후 중국군에 머무시면서 우리 청년들을 독립군 장교로 육성하셨으며, 김구 선생의 권유로 한국광복군 참모장으로 활동, 미국 전략첩보국과 독수리 작전에 매진하기도 하셨습니다.


광복 후에는 풍부한 야전 경험을 토대로 육군사관학교와 육군참모학교 교장 등을 역임하시며 국군 양성에 힘쓰셨습니다.


특히, 6·25전쟁이 발발하자 시흥지구 전투사령관으로서 적의 한강 도하를 일주일 간 저지하여 적의 공격속도를 둔화시킴으로써 유엔군 개입이전 스러져가는 조국을 구하셨습니다.


이후에도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셨던 장군님께서는 우리나라의 근대화와 민주화에도 기여하셔서 건국·무공·청조근정 등 분야별로 최고의 훈장을 수여 받으셨고, ‘오성장군’이라는 영예로운 호칭도 얻으셨습니다.


이처럼 전 생애를 통틀어 나라를 되찾고, 나라를 지키고, 그리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셨던 장군님의 삶과 고귀한 정신은 오늘날 현 시점에서 우리들에게 그 의미가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고 생각됩니다.


정부는 장군님의 일생과 맞닿아 있는 ‘독립, 호국, 민주’의 가치를 균형 있게 예우하고, 우리의 후손들도 그 소중한 가치를 온전히 계승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추도식을 위해 애써주신 평안북도중앙도민회 허덕길 회장님과 김영철 전 평안북도지사님을 비롯한 관계자 분들과 바쁘신 중에도 함께하신 승병일 지사님, 한기호 의원님, 허현 광복회 부회장님과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다시 한 번 일서 김홍일 장군님께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바치며, 평안한 안식을 기원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20. 9. 23.
국가보훈처장 박 삼 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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