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부(국문) - 독립기념행사 상세보기 - 행사명, 행사목적, 행사일, 시간, 장소, 주최, 주관, 참석인원, 행사내용, 식순, 주요참석자, 성명, 생년월일, 주요공적, 서훈, 특이사항, 파일 정보 제공
행사명 |
신니면민 만세운동 기념식 및 재현행사 |
행사목적 |
우리지역 만세운동 기념식 및 만세재현행사 중 유일하게 국고 보조금을 지급하는 행사로서 만세재현을 통해 애국심 함양을 할 수 있는 좋은 계기 |
행사일 |
2015-04-01 |
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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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용원초등학교 정문 신니면민 만세운동 유적비 및 용원장터 |
주최 |
광복회충북지부북부연합지회 |
주관 |
광복회충북지부북부연합지회 |
참석인원 |
270명{주요인사20(충주부시장, 의장 등)/회원20/학생80/주민150} |
행사내용 |
<p>내용참조</p> |
식순 |
국민의례, 헌화 및 분향, 독립선언서 낭독 및 만세삼창 등 |
주요참석자 |
주요인사20(충주부시장, 의장 등)/회원20/학생80/주민150 |
성명 |
손승억 |
생년월일 |
미상 |
주요공적 |
충청북도 중원(中原) 사람이다. 1919년 3월 31일 동지들과 함께 이희갑(李喜甲)의 집에서, 이튿날 신니면(薪尼面) 용원(龍院) 장날을 기하여 독립만세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고, 단경옥(段慶玉)·이희갑·이강렴(李康濂) 등과 독립선언서를 제작, 등사하였다. 4월 1일 약 200여명의 군중이 모인 장터에서 그들의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고,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체포되었다. 그는 그해 8월 16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8월형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그러나 청주형무소에서 만기 출옥하게 될 때 옥문에서 재차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다 재수감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다시 2년간의 옥고를 치른 후 출옥하였다. 출옥은 하였지만 일본 헌병·경찰 등의 감시와 탄압이 계속되자, 1934년 4월 16일 독립만세를 외치고 목을 매어 자결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6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註·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172면 ·한국독립사( |
서훈 |
독립장 (68) |
특이사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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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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