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부(국문) - 독립기념행사 상세보기 - 행사명, 행사목적, 행사일, 시간, 장소, 주최, 주관, 참석인원, 행사내용, 식순, 주요참석자, 성명, 생년월일, 주요공적, 서훈, 특이사항, 파일 정보 제공
행사명 |
만해 한용운 선생 73주기 추모재 |
행사목적 |
3ㆍ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으로 독립운동가이자 승려이며, 시인으로서 항일독립운동에 앞장섰던 한용운 선생의 서거 제73주기를 추모하고 공훈을 기리기 위함 |
행사일 |
2017-06-29 |
시간 |
16:00 |
장소 |
aw컨벤션센터 |
주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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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 |
(재)선학원 |
참석인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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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내용 |
<p><br></p> |
식순 |
개회 - 헌향, 헌다 - 묵념 - 행장 소개 - 추모공연 - 추모사 - 추모말씀 - 내빈 헌화 및 소개 - 폐회 |
주요참석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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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
한용운 |
생년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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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공적 |
만해 한용운 선생(1879. 8. 29.~1944. 6. 29.)은 충남 홍성에서 태어났으며, 동학농민운동과 의병활동 등을 목격하면서 집을 나서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1905년에 인제의 백담사로 들어가 승려가 되었다.
1910년 일제가 강제로 우리나라 주권을 박탈하자,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군 군관학교를 방문ㆍ격려하고, 만주와 시베리아 등지로 유랑하다가 1913년 귀국하여 불교학원에서 교편을 잡았다.
같은 해에는 《 조선불교유신론 》을 간행하였고 1914년에는 《 불교대전(佛敎大典) 》을 저술하였으며, 대승불교의 반야사상에 입각하여 종래의 무능한 불교를 개혁하고 불교의 현실 참여를 주장하였다.
1918년에는 본격적인 불교 잡지 《 유심(惟心) 》을 발간하며 민중계몽운동과 문화계몽운동을 전개하여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선생을 포함한 민족대표 33인은 인사동의 태화관에 모여 독립선언식을 가진 뒤 일경에 체포되었으며, 선생은 이로 인해 징역 3년형을 받고 서대 |
서훈 |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962) |
특이사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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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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