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부(국문) - 독립기념행사 상세보기 - 행사명, 행사목적, 행사일, 시간, 장소, 주최, 주관, 참석인원, 행사내용, 식순, 주요참석자, 성명, 생년월일, 주요공적, 서훈, 특이사항, 파일 정보 제공
행사명 |
안중근 의사 순국 107주기 추모식 |
행사목적 |
중국 하얼빈에서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여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를 세계만방에 알린 안중근 의사를 기리는 추모식 |
행사일 |
2017-03-26 |
시간 |
10:00 |
장소 |
안중근의사기념관 |
주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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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 |
(사)안중근의사숭모회 |
참석인원 |
각계인사, 유족, 회원, 시민 등 500여명 |
행사내용 |
<p><br></p> |
식순 |
약전봉독 - 최후의 유언 낭독 - 추모식사 - 추모사 - 추모공연 - 헌화 - 추념가 제창 - 폐식 |
주요참석자 |
국가보훈처 차장, 광복회장 |
성명 |
안중근 |
생년월일 |
1879.9.2. |
주요공적 |
안중근 의사(1879. 9. 2.~1910. 3. 26.)는 황해도 신천 사람으로, 1905년 을사늑약 후 중국 상해로 건너 가 국권 회복의 길을 강구하다가 부친상을 당하고 돌아와서 사재(私財)를 털어 삼흥학교(三興學校)ㆍ돈의학교(敦義學校)를 세워 인재 양성에 힘썼다.
그러나 광무황제의 폐위, 군대의 해산 등 나라가 식민지 상태에 이르자 다시 해외로 나가 이범윤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으며, 1908년에는 의군장이 되어 의병부대를 거느리고 함경북도로 진입하여 경흥ㆍ회령 등지에서 대일 항전을 전개하였다.
그 후 다시 러시아령의 블라디보스톡ㆍ연추(煙秋) 등지를 왕래하면서 동지들과 구국의 방도를 모색하였고, 1909년 봄에는 김기룡(金起龍)ㆍ조응순(趙應順)ㆍ황병길(黃柄吉) 등 동지들과 함께 손가락을 잘라 ‘단지동맹’을 결성하여 일사보국(一死報國)을 맹세하였다.
1909년 9월, 러시아령 블라디보스톡에서 일제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우덕순 |
서훈 |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
특이사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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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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