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부(국문) - 독립기념행사 상세보기 - 행사명, 행사목적, 행사일, 시간, 장소, 주최, 주관, 참석인원, 행사내용, 식순, 주요참석자, 성명, 생년월일, 주요공적, 서훈, 특이사항, 파일 정보 제공
행사명 |
운암 김성숙 선생 48주기 추모재(追慕齋) |
행사목적 |
승려 신분으로 만세운동을 주도하고 일생을 항일 투쟁에 헌신한 김성숙 선생을 기리는 행사 |
행사일 |
2017-04-12 |
시간 |
11:00 |
장소 |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 |
주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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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 |
(사)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 |
참석인원 |
유족, 광복회원, 각계 인사, 시민 등 300여명 |
행사내용 |
<p><br></p> |
식순 |
국민의례 - 약사보고 - 내빈소개 - 추모사 - 추모가 - 헌화 및 분향 - 조총발사 및 묵념 - 감사말씀 - 폐식 |
주요참석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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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
김성숙 |
생년월일 |
1898.3.10. |
주요공적 |
운암 김성숙 선생(1898. 3. 10.~1969. 4. 12.)은 평안북도 철산군에서 출생하고 19세에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1919년 3월 경기도 남양주군 봉선사의 승려로 있을 때 ‘조선독립군 임시사무소’라는 명의로 동료들과 함께 격문을 만들어 인근 동리에 살포한 사건으로 일경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조선무산자동맹’과 ‘조선노동공제회’에 가담하였으며, 1923년 일경의 탄압이 심해지자 불교 유학생으로 중국 북경으로 건너 가 ‘고려유학생회’ 및 ‘창일당’을 조직하고 ‘조선의열단’ 활동에 참여하는 등 적극적으로 항일민족운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중국 전역의 한국인 청년들을 모아 ‘재중국조선청년동맹’을 조직하고, 1936년에는 ‘조선민족해방동맹’을 결성하였다. 1938년 ‘조선의용대’ 간부로 임명되어 활동하던 중 1942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무위원으로 취임하였고, 이후 내무차장으로도 활동하였다.
1943년에는 임시정부 행정부의 한 부처로 |
서훈 |
건국훈장 독립장('82) |
특이사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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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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