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부(국문) - 독립기념행사 상세보기 - 행사명, 행사목적, 행사일, 시간, 장소, 주최, 주관, 참석인원, 행사내용, 식순, 주요참석자, 성명, 생년월일, 주요공적, 서훈, 특이사항, 파일 정보 제공
행사명 |
헐버트 박사 서거 68주기 추모식 |
행사목적 |
대한제국의 국권 회복을 위해 일제와 맞서다 추방당한 헐버트 박사를 기리는 추모행사 |
행사일 |
2017-08-11 |
시간 |
11:00 |
장소 |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 선교기념관 |
주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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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 |
(사)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
참석인원 |
각계인사, 기념사업회원, 시민 등 300여명 |
행사내용 |
<p><br></p> |
식순 |
국민의례 - 추모기도 - 약력보고 - 식사 - 추모사 - 영상시청 - 헐버트 아리랑 감상 - 인사말 - 헌화 |
주요참석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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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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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
1863.1.26. |
주요공적 |
헐버트 박사(homer b. hulbert, 1863. 1. 26~1949. 8. 5)는 미국 버몬트주에서 출생하였으며, 1886년 23세의 나이로 대한제국 왕립 영어학교인 육영공원의 교사로 내한하여 외국어를 가르치는 한편 외교 자문을 맡아 광무황제를 보좌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 후 광무황제의 밀서를 휴대하고 미국 국무장관과 대통령을 면담하여 을사늑약의 무효와 한국의 자주 독립을 주장하고자 하였고, 이듬해 「한국평론」을 통해 일본의 야심과 야만적 탄압을 폭로하는 등 한국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데 앞장섰다.
1907년 이상설 등이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광무황제의 밀사로 참석하여 각국 외교관과 현지 언론에 을사늑약의 무효와 대한제국의 국권회복을 호소하자, 이를 적극 지원하였다.
헐버트 박사는 미국에 돌아간 후 40여년만인 1949년 7월 29일 대한민국 정부의 초청으로 8ㆍ15 광복절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내한하였다가, 일주일만인 1949년 8월 5일 8 |
서훈 |
건국훈장 독립장 |
특이사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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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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