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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행사

국가보훈부(국문) - 독립기념행사 상세보기 - 행사명, 행사목적, 행사일, 시간, 장소, 주최, 주관, 참석인원, 행사내용, 식순, 주요참석자, 성명, 생년월일, 주요공적, 서훈, 특이사항, 파일 정보 제공
행사명 단재신채호선생순국79주기추모제
행사목적 단재신채호선생추모제
행사일 2015-02-21
시간
장소 단재영당 / 신채호선생 묘소 (낭성면 귀래리)
주최 단재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
주관 단재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
참석인원 100명(주요인사30 / 일반시민 60 / 학생10)
행사내용 undefined
식순
주요참석자
성명
생년월일 1880. 11.7 ~ 1936. 2.21
주요공적 충청남도 대덕(大德)군 산내(山內)면 어남(於南)리에서 태어났다. 1898년에 성균관에 입교했다가, 독립협회(獨立協會)에 가입했으며, 만민공동회 운동 때에는 간부급으로 적극적 활동을 전개하여 그 해 연말에 독립협회가 해산 당할 때 일시 투옥되었다. 독립협회 해산 후에는 향리에 돌아와 문동학원(文東學院) 등에서 신교육에 종사하였다. 1904년에는 신규식(申圭植) 신백우(申伯雨) 등과 함께 향리의 이웃에 산동학당(山東學堂)이라는 신식학교를 설립하였다. 1905년에 장지연(張志淵)의 요청으로 『황성신문(皇城新聞)』의 논설기자가 되어 활동하였다. 이해 11월 18일에 소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고 일제가 이를 비밀에 부치자 장지연이 1905년 11월 20일자 『황성신문』에 「시일야 방성대곡(是日也 放聲大哭)」이라는 논설을 기표하여 이를 폭로 규탄하자 『황성신문』이 무기 정간되었다. 이에 양기탁(梁起鐸)의 요청으로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의 논설기자로 자리를 옮기었다. 『대한매일신보
서훈 대통령장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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