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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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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둘째주 탐방 - 기미년3.18대한독립만세의거비
부서 지도과
기미년3.18대한독립만세의거비(己未年三一八大韓獨立萬歲義擧碑) □ 소재지 : 경북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1228(방지초등학교문명분교 내) □ 건립기관 : 기미년3.18대한독립만세의거비건립추진위원회 □ 건립일자 : 2000. 8. 15 □ 시설규모 : 부지 10평, 높이 6m(좌대 1.5m, 비신 3m, 갓머리 1.5m) □ 관리기관 : 방지초등학교문명분교 □ 내용 1919년 3월 18일 청도군 운문면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기념하기 위하여 건립한 시설이다. 1919년 청도 운문 신원동의 김상구, 김종태가 고종 인산에 참여하여 3.1의거를 목격하고 온 후 지역의 젊은 지사들도 항일시위를 계획하였다. 3월 10일 신원동 문명학교 교장 김우곤의 집에 모여 의논한 후 3월 15일에는 같은 마을 박창기 집에 손기현, 김재화가 모여 동포 형제에게 고하는 격문 20여 매를 써서 면소재지인 대천동을 비롯하여 방음동, 서지동, 오율동, 신원동 등 여러 곳에 붙였다. 3월 18일 아침 지난 15일에 격문을 붙인 주동자를 찾는 대천주재소 경찰들이 김진효, 김상구, 김종태, 손한조, 김종식, 강재식, 홍용팔, 홍해성, 김대선 등을 연행하여 조사하였으나 완강히 부인하여 오후 3시경 일단 석방이 되었다. 취조를 받고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김진효, 김종태, 홍해성의 주장으로 즉석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결의하고, 면사무소로 가서 면서기들에게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큰 깃발을 제작하도록 하여 독립기를 들고 이들과 함께 면사무소를 나와 동리를 시위행진하고, 면장인 이영호(李永浩)의 집에서 독립만세를 소리높여 부른 후, 돌아오는 길에 방음동(芳音洞)·오진동(梧津洞)에 들러 또다시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같은 날 밤 이용환, 김문근, 최성희, 윤병림 등은 공암동과 그 이웃마을 주민들을 규합하여 크게 만세를 불렀다. 3월 19일 저녁 청도경찰서의 순사 등 7명이 18일 시위 주동자 중 1명인 김상구의 어머니를 연행하려 하자 김의탁, 강성봉, 김병준 등 동민 300여명이 순사를 둘러싸고 거부하였고 권총 2발을 발사하는 순사 등을 쫓아버렸다. 3월 20일 대구 헌병분대 헌병 3명과 청도 경찰서 서장 이하 4명의 경찰이 출동하여 대대적인 검거를 하여 애국청년이 차례로 잡혀갔으며, 25명이 재판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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