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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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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둘째주 탐방 - 우강 송종익 선생 흉상(2003.10.13)
부서 지도과
우강 송종익 선생 흉상(友江 宋鍾翊 先生 胸像) 소재지 : 대구 수성구 범어2동 222-8(대구흥사단 내) 건립기관 : 대구흥사단 건립일자 : 1999. 10. 4 시설규모 : 좌대 70×90×160㎝, 흉상 50×70×90㎝, 약력석, 건립기념석 관리기관 : 대구흥사단 내 용 우강 송종익선생(1887.2.27-1956.1.7)은 대구 출신으로 1906년 4월 유학을 목적으로 도미(渡美)하여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결성된 민족운동단체인 공립협회(共立協會)에 가입하여 민족운동에 진력하였다. 1908년 3월 장인환(張仁煥)·전명운(田明雲) 의사가 대한제국 외교고문이면서 일본의 한국침략을 정당화하는 발언을 한 스티븐스를 처단하자, 양 의사의 재판후원회를 결성하여 한국인의 독립의지를 구미 각국에 널리 인식시켰다. 1913년 5월 샌프란시스코에서 민족 장래에 동량이 될 인재 양성을 위해 홍언(洪焉) 등 8명의 창립발기위원과 함께 흥사단(興士團)을 창립하였다. 1919년 3월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재무로 활동하면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설립에 필요한 자금을 모집·송금하였으며, 1941년 8월 미주내 모든 단체들을 통합한 재미한족연합위원회(在美韓族聯合委員會)가 조직되고 미주 로스앤젤레스에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부(執行部)가 설치되고 집행부 위원으로 선임되자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후원과 외교 및 선전사업을 추진하였다. 또한 1941년에는 대한인국민회 부의장, 1943년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부 위원 겸 재무로 선임되어 활동하기도 하였다. 1945년 조국이 광복되자, 그 해 10월 조국의 재건을 후원할 목적으로 구성된 재미한족국내파견대표단(在美韓族國內派遣代表團)의 재무로 선임되어 고국을 떠나온 지 40여년 만에 조국의 땅을 밟았으나, 당시 해방정국의 혼란으로 인해 별다른 활동을 보이지 못하고 8개월만에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 후 로스엔젤레스에 거주하면서 한인사회를 위하여 일하다가 1956년 1월 7일 신병으로 별세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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