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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보훈지청

지(방)청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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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우리고장 출신 독립운동가
부서 보훈과
경남 울산(蔚山)울주 두동면 출신이다. 김창숙(金昌淑)의 사장(査丈)인 그는 1926년 김창숙이 독립군기지 건설과 군사 양성을 위해 국내에서 군자금 모집운동을 전개할 때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면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북경(北京)등지에서 활동하던 김창숙은 1926년 1월 중국으로부터 밀입국하여 군자금 모금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당시 김창숙 등은 내몽고(內蒙古) 지방의 미간지와 황무지 20만 정보를 매입하여 이상촌(理想村)을 건설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즉 만주 지역의 한인들을 집결시켜 개간사업을 일으키고, 그 수익금으로 무관학교(武官學校)를 설립하여 군대를 양성하여 둔병식(屯兵式)제도를 실시함으로써 10년 동안의 실력양성을 통하여 독립을 달성한다는 원대한 포부였다. 당시 곽종석문집(郭鍾錫文集)의 출판중이던 손진인의 자 손후익(孫厚翼)도 송영호(宋永祜), 김화식(金華植), 이봉로(李鳳魯)등과 뜻을 같이 하여 경남의 울산·양산·동래 방면의 군자금 모집을 담당하였다. 그런데 이 때 김창숙이 교통사고로 부상당하자 그는 아들 손후익(孫厚翼)과 함께 김창숙을 보호하면서 정성껏 간호하는 한편 경주 지방의 부호들을 대상으로 한 군자금 모집의 책임을 맡아 활동하였다. 1927년 2월 이 일이 발각됨으로써 그는 일경에 피체되어 고초를 겪었고, 손후익도 일경에 피체되어 1927년 3월 29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제령 7호 위반으로 징역1년6월, 집행유예 3년형을 언도받았다. 이 일로 정부에서는 손진인(孫晉仁)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포 장을 추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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