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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지역 ‘民草항일의병 魂 ’ 기린다
부서 보훈과
춘천지역 ‘民草항일의병 魂 ’ 기린다 춘천 가정리 ‘항일의병 유적기념비’건립 일제가 우리나라 국권을 강탈하기 3년 전 춘천지역 민초들은 스스로 목숨을 사르며 의병 투쟁으로 항거했다. 그 이름 석자조차 변변히 남기지 못한 아픔의 역사적 삶의 현장인 춘천시 남면 가정리 여의내골에 어엿한 조형물의 ‘항일의병 무기 제조·훈련장 유적기념비’가 건립 돼 뒤늦었지만 민초의 넋을 위무하며 새로운 의병유적 명소로 자리매김돼 눈길을 끌고 있다. 가정초등학교 앞으로 난 길을 따라 1Km 정도 위쪽에 자리한 유적기념비는 (사)의암유인석선생기념사업회 주관으로 강원도·춘천시가 후원하여 지난해 말 건립됐다. 여의내골 의병 유적지는 일제가 대한제국 군대를 강제해산하는 등 전국적으로 정미의병이 전개될 때 유홍석을 의병장으로 600여명의 청년과 중노년층은 물론 여성·할머니까지 합세해 무기와 화약을 제조했으며 여성이 군사훈련까지 받았던 치열했던 의병투쟁의 현장이다. 전국적으로 현존 한말 항일의병 무기제조 및 훈련장으로 드물게 보존되고 있는 이곳에 반듯한 현충시설물이 건립됨으로써 시민들은 물론 외지 관광객들에게 의병활동상을 알리고, 의병정신을 기리는 역사 문화 탐방지로 각광을 받을 전망이다. “유적지 고증 사료·학술탐구” 의병장 尹熙順 (1860-1935) ‘해병윤씨 가정록’ 기록 최복규, 이구영 전 강원대교수 화약제조 의소성 발혀 춘천시 남면 가정리 여의내골이 1907년 정미년 의병투쟁 때 춘천의병진이 병기와 화양을 제조하고 군사훈련을 하며 전투를 준비했던 사실을 고증하는 대표적 사료로 당시 안사람 의병단을 이끌며 이를 주도한 여성의병장 윤희순이 1934~1935 만주에서 직접 붓으로 쓴 한글문서 “해평윤씨 가정록”에 기록돼 있다. 윤희순은 이 문서에서 자신을 비롯한 집안 일가의 의병투쟁 활동상과 자손에게 민족사상을 강조하는 교훈을 담아 남기고 있다. 이 사료를 근거로 춘천지역 사학자를 중심으로 의병사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졌다. 최복규 강원대 교수는 1980년대 여의내골 현지를 직접 담사하고 ‘강원의병 유적지의 조사연구’주제의 학술논문을 발표했다. 최교수가 여의내골 병기와 탄약제조 터 현지를 답사했던 당시 밭으로 변한 500여평의 현장에서는 금속을 녹여 병기를 만들고 남은 쇳덩어리가 곳곳에서 출토돼 유적지임을 알려 줬다. 이구용 교수는 ‘춘천항일독립운동사’에서 ‘여의내골은 의병훈련장으로서 한말 의병의 사적지로서 그 의의가 크다’고 자리매김 했다. ■ 비 문 내 용 1907년 대한제국의 광무(고종)황제를 퇴위시키고, 군대마저 강제해산시킨 일제가 우리나를 식민지로 삼으려 하자 이에 통분한 춘천의 의병장 외당 유홍석과 여성의병장 윤희순을 비롯한 남녀노소 700여 의병이 같은 해 8월 춘천시 남면 여의내골을 중심으로 크게 봉기하였다. 이 때 춘천의진은 의병투쟁에 긴요한 화약과 탄환 등을 조달할 수 있는 무기제조소를 설치하고, 의병훈련을 실시하는 동시에 의병의 사기를 진작시킴으로서 보다 피맺힌 대일항쟁을 펼쳤다. 이에 구국항쟁의 역사적 현장이요, 민족정기가 서린 성스런 유적지의 소중한 흔적과 뜻 깋은 의의를 새기고 기리고자 정성을 모아 이곳에 기념비를 세웁니다. 2005년 12월 20일 (사)의암유인석선생기념사업회· 강원도· 춘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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