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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청소식

지(방)청소개

국가보훈부(국문) - 우리청소식(대구지방보훈청) 상세보기 - 제목, 부서, 내용, 파일, URL 정보 제공
금주탐방 - 운영조기홍지사상(雲影趙氣虹志士像)(2003.4.28)
부서 지도과
운영조기홍지사상(雲影趙氣虹志士像) □ 소재지 : 대구 달서구 두류동 산309-2(두류공원 조각동산 내) □ 건립기관 : 애국지사조기홍선생동상건립추진위원회 □ 건립일자 : 1999. 10. 13 □ 시설규모 : 흉상1.1m, 좌대2m, 공적비 1m □ 관리기관 : 대구두류공원관리사무소 □ 내용 운영 조기홍(1883 - 1945)선생은 대구출신으로 1919년 임시정부 특파원 강태동, 이정래에게서 동포 관공리의 사직을 권고하는 전단과 임시정부 내무총장 이동녕 명의의 독립운동을 촉구하는 포고문, 상인들의 폐점을 권유하는 포고문 등을 교부받았다. 그리하여 최익무, 서상하, 이종선과 함께 대한민보(大韓民報), 독립축하가(獨立祝賀歌)와 포고문을 등사판으로 수 백 매 씩 복사한 후 대구 시내 각 사립학교와 상점에 배포하여 민족의식의 고취에 힘썼다. 이일로 인하여 일경에 체포되어 징역 1년형을 언도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20년 6월 하순 양한위, 권태일 등과 대구시 남문시장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모임을 갖고 독립운동의 방안에 관하여 협의한 결과 조국의 독립을 촉진하기 위하여 일제에 협력하는 한국인 관공리를 처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데 뜻을 같이 하였다. 이를 위해 이들은 폭탄을 제조하여 대구 남방 비파산(琵琶山)에 숨겨두고 기회를 기다리던 중 일경에 체포되어 3년 6월의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도 항일독립운동을 계속하다가 1943년 일경에 체포되어 가혹한 고문을 받고 그 후유증으로 1945년 8월 2일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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