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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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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보훈지청 "1월의 국가유공자" 선정
부서 보훈과
인천보훈지청, 2005년 1월 이달의 국가유공자로 안 재홍(安在鴻) 지사 선정 인천보훈지청(지청장: 권율정)은 2005년 1월의 국가유공자로 안재홍 독립유공자를 선정해서 발표했다. 인천보훈지청이 새해 지표로 삼은 “시민과 함께하는 보훈”의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방안의 하나로, 인천 지역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유공자 가운데 혁혁한 공을 세우신 분을 이달의 국가유공자로 예우하여, 일반 시민들에게 귀감으로 삼고자 하는데 그 의의가 있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시행하는 의미 깊은 제도로서, 광복 60주년을 기념하고 국권회복을 위해서 노심초사 고생한 공을 선양하는 차원에서, 많은 국가유공자 대상 가운데 그 첫 번째로 독립유공자를 선정하게 되었다. 안재홍 지사는 경기도 평택 태생으로 1912년 동경유학 중 조선유학생 학우회를 조직하여 민족의식을 고취하다 와세다 대학 재학 중 상하이로 건너가 독립단체인 동제사에 가입하고 1919년 4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지령에 따라 서울에서 청년들을 규합하여 청년외교단을 조직하고 총무로 활동하다 체포되어 3년의 옥고를 치렀다. 수형생활을 마친 후에 1927년 조선일보의 주필로 재직하며 아울러 신간회 총무간사에 피임되어 언론을 통하여 민족의식을 고취하다 1928년 7월 조선일보 필화사건으로 8월의 금고형을 치르고 1929년 전남 광주에서 학생운동이 일어나자 신간회와 협동하여 조선 민중대회를 열고 일제를 규탄하다 체포되었으며 1937년에는 난징(南京) 군관학교 학생모집 운동으로 체포되어 수감도중 광복을 맞이하였다. 광복 후에는 미군정청, 군정장관 및 민의원으로 활동 도중 6.25가 발발하여 북한에 납치되었다. 안 지사의 유족으로 현재 장손이 부평에 거주하면서 위대한 독립운동가인 안재홍 지사 후손으로서의 자긍심을 갖고서 “안재홍 지사 전집”을 출판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정부는 안 지사의 공훈을 인정하여 1989년 건국훈장 중 두 번째로 등급이 높은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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