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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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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우리고장 출신 독립운동가
부서 보훈과
자랑스런 우리고장 출신 5월의 독립운동가 『정진영(鄭鎭永) 선생』주요공적 (1908. 5. 6 ∼ 1982. 1. 6) 양산 상북 출신인 선생은 1932년 양산농민조합사건에 가담하신 분으로 탄신 95주기를 맞이하여 자랑스런 우리고장(울산·양산) 출신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으며, 주요공적은 다음과 같다. 1908년 양산 산막리 영동마을에서 농군의 아들로 태어난 선생은 농사를 도우며 틈틈이 서당에서 글을 익혔고, 1930년 일본설립학교를 중퇴한 후에는 농사일에 전념하였다. 1931년 4월에 양산농민조합이 조직되자 여기에 가입하여 소년부원으로 활동하였다. 양산농민조합은 1932년 2월 20일 양산사회단체회관에서 제3회 정기총회를 개최하고 첫째, 소작권 영구확립, 둘째, 지세공과금의 지주부담, 셋째 소작료 4할 납부 등을 결의하였으나 일경은 신영업을 비롯한 16명의 조합간부들을 체포하였다. 선생은 김장호와 함께 피체된 조합간부들을 구출할 것을 결의하고, 최학윤, 최해금, 최달수, 김태근 등 3백여 명의 조합원들을 주도하여 동년 3월 16일 양산경찰서에서 조합간부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시위운동을 폈다. 이때 일경의 발포로 인하여 조합원 윤복이가 순국하는 등 일경이 무력으로 탄압하자 조합원들은 일단 양산 양산협동조합 사무소로 피신하였다. 이들은 피체된 조합간부들을 호송하는 도중 구출할 계획을 세웠으나, 일경의 급습을 받아 선생을 비롯한 170여 명의 조합원이 피체되었다. 선생은 이 일로 인하여 1932년 10월 13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소위 소요죄 위반으로 징역 10월형을 언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2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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