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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동부보훈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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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55년 만에 돌아온 ‘장복동 일병’
부서 보훈과
1951년 戰死… 지난 9월 유해 발견돼 신원 확인 유품 받은 유족 “恨 풀었다”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아버지지만… 이렇게 고마울 수가….” 6·25 때 전사한 고(故) 장복동 일병의 아들 장채윤(58·전남 여수시)씨는 20일 육군의 전화를 받고 말을 잇지 못했다. 두 살 때였던 1951년 1월 ‘중공군 정월대공세’로 잃은 아버지가 55년 만에 뼈와 유품으로 돌아온 것이다. 장씨의 부인 김송심(52)씨는 “꿈에서나 만나던 아버지였다고 해요. 아버지 정을 못 받아 늘 가슴에 맺혀 했었는데 이제 그 한을 풀게 됐네요”라고 했다. 장 일병은 육군 9사단 30연대 소속으로 지리산 공비 토벌작전에 이어 강원도 홍천 지역에서 인민군·중공군과 맞서 싸우다 전사했다. 그의 고향인 여수시 손죽도에서는 6·25 때 입대한 마을 청년 50여 명 가운데 절반만 돌아왔다. 이후 매년 아버지가 전사한 날짜로 추정되는 음력 11월 26일을 기해 제사를 올려왔다. 장 일병의 유해는 9월 21일 육군 유해발굴단이 찾아냈다. 전쟁 때 전사자 시신을 수습한 강원도 홍천군 내면 율전2리 마을 사람의 후손이 유해를 묻은 장소를 기억했다가 육군에 제보한 덕분이다. 발굴 현장에서는 유골과 유품 등 20여 점이 발견됐다. 하지만 장 일병의 신원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단서는 스테인리스로 된 수통 하나였다. <사진> 거기에 못 같은 것으로 새겨진 ‘張福東’이라는 이름을 병적기록에서 찾은 끝에 장 일병이 1950년 9월 10일 입대한 전남 여수시 손죽도 출신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육군은 손죽도를 찾아가 수소문했고, 수통과 함께 발견된 유골과 아들 채윤씨의 혈액을 DNA 대조검사로 재확인해 최근 가족임을 확정했다. 장 일병의 유해 봉안식은 다른 전사자 유해와 함께 21일 서울 국립현충원에서 열린다. 유족들은 이를 계기로 제사날짜를 6월 6일 현충일로 옮기기로 했다. “돌아가신 분을 찾아준 국가에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서도 유골이 안장될 대전 현충원에서 추모식을 올리기로 했습니다.” 유족들은 나라를 지키다 산화한 ‘장복동 일병’을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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