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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청소식

지(방)청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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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 탐방 - 중호 임용상 의사지상(2003.2.3)
부서 지도과 선양계
중호 임용상 의사지상 □ 소 재 지 :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9동 산227-1(앞산공원 내) □ 건 립 일 : 1972. 5월 □ 건립기관 : 임용상의사 기념사업회 □ 시설규모 : 높이 5.8m □ 내용 임용상(1877∼1958)은 경북 청송 출신으로 경상도 정환직 의병진에서 활동한 의병장이다 1905년 을사조약이 늑결되자 영덕에서 김재서 등과 창의군을 조직하여 동해창의대장으로 추대된 후 청하, 영덕, 강구 등지에서 일본군의 주둔소를 습격하고 적군 다수를 사살하였다. 1907년 4월 정용기의 산남의진이 결성되자 이에 합세하여 유격장 겸 도총장으로 임명되어 청송, 영천 등지에서 일본군을 격살하였다. 또한 1907년 의병 수 백명을 이끌고 흥해 지방에서 일본군과 격렬한 전투를 전개하기도 하였다. 그 후 1907년 12월 정용기가 전사하자 그의 부친인 정환직을 의병대장으로 추대하고 총장이 되어 청송, 청하, 영덕 등을 중심으로 일본군을 공격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1909년 5월 청하를 공격하다가 포위, 체포되어 3년형을 선고받았다. 1910년 초 일제의 회유정책으로 석방되자 보현산을 중심으로 해산상태에 있던 산남의진을 다시 정비하고 스스로 의병장이 되어 군자금을 조달하고 무기를 획득하여 청송, 의성 등지의 일본군 수비대를 공격하였으며, 안평전투에서 체포되어 1910년 7월 25일 징역 10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도 일제의 박해에 굴하지 않고 군자금 모집 활동 등 독립운동에 계속 헌신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을 기리어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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