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우리청소식

지(방)청소개

국가보훈부(국문) - 우리청소식(강원서부보훈지청) 상세보기 - 제목, 부서, 내용, 파일, URL 정보 제공
(춘천) 진정한 보훈 - 고 심일소령의 동생 승택씨에 온정의 손길
부서 보훈과
故 심일소령은 한국전쟁의 영웅이다. 그는 1949년 육사 8기로 임관한 뒤 다음해에 6·25전쟁이 일어나면서 6사단 7연대 소대장으로 곧 바로 전선에 투입된다. 당시 파죽지세로 남하하는 북한군의 자주포가 전차포를 맞고도 계속 전진해 오자 심일소령의 5명의 특공대를 편성, 수류탄과 화염병을 들고 직접 적의 포탑 위로 돌진하는 육탄공격으로 적의 자주포 3대를 격파하였다, 이 사실이 모든 전선에 전파되어 자주포에 대한 공포심 제거와 우군의 사기진작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한강 방어선을 구축하고 유엔군이 참전하는 교두보를 확보하는데 결정적으로 공헌하였다. 이후 심일소령은 영천 304고지 전투 중 혁혁한 공훈을 세웠으며 7사단 수색대 근무 중 영월지구에서 28세의 젊은 나이로 장렬히 전사하였고 위관급 장교로서는 최초로 태극무공훈장이 추서 되었다. 최근 춘천대첩의 영웅 심일소령에 대한 다양한 조명과 재평가가 활발하게 이루어 지고 있다. 그가 싸웠던 전장과 모교인 육군사관학교에 추모동상이 세워지고, 춘천에서는 2005년 10월 춘천의 무공수훈 회원들이 주축이 된 춘천대첩선양회의가 창립총회를 가졌고, 육군은 2002년 심일賞을 제정, 그의 군인정신을 기리고 있다. 그의 가족이 살고 있는 원주시에서도 태장동 현충공원에 2억의 예산으로 올 연말까지 추모동상을 건립, 고귀한 희생정신을 계승해 나갈 계획이다. 고 심일 소령은 그 개인의 무공뿐만 아니라 가족사 전체가 살신성인의 호국정신의 결정체이다. 그의 가족사는 민족분단과 전쟁의 상흔이 투영되 있다. 심일 소령은 2005년 3월 원주에서 101세를 일기로 사망한 조보배 여사의 네 아들 중 맏이였다. 서울대 사범대학에 재학 중 나라를 위해 군인이 되기로 결심하고 육사에 입학 전사했으며, 둘째는 경찰 복무 중 순직했고, 셋째는 학도병으로 참전했다가 실종되었다. 3형제가 모두 나라를 위해 희생한 것이다. 부친 심기연씨는 평생을 사회복지 사업에 헌신하여 수만평의 돌밭을 제대군인들과 개간하여 그들에게 무상 배분하여 줌으로서 제대군인의 자립지원에 기여하였고, 태극기 보급운동 등으로 5·16 민족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1964년에는 원주시 태장동 소재 2만여㎡의 땅을 현충탑부지로 선뜻 내놓았었다. 고귀한 목숨과 재산을 모두 나라에 헌납했던 것이다. 노모는 지난해 사망하기까지 유일한 혈육인 막내아들 심승택(53세)씨와 어려운 가계를 꾸려왔다. 지금 승택씨가 간암이라는 병마와 외로운 사투를 벌이고 있다. 그는 2002년 이후 투병을 해오면서도 노모봉양과 생계를 위해 원주시청 기능직공무원으로 근무하여 왔으나 최근 병세가 크게 악화된 것이다. 간이식 수술 이외의 다른 방도가 없으나 막대한 수술비를 마련할 방도가 없어 애를 태우고 있다는 보도를 접하고 춘천·강릉 보훈지청 전 직원들이 십시일반 성금을 갹출하였다. 2006. 1. 13(금) 15:00 김대일, 이기용 춘천 · 강릉보훈지청장은 승택씨의 자택을 방문, 그동안의 수고와 희생을 격려하며 성금을 전달하고 “의지를 잃지 말고 병마와 싸워 반드시 이겨줄 것”을 당부하였다. 한편 육군 36사단 장병들도 모금활동을 벌이고 있고, 원주시청 세무과장은 포상금으로 받은 100만원을 전달하고 위로 하였으며, 심일소령의 은사인 손희선예비역 장군도 100만원의 성금을 전달하는 등 온정의 손길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파일
UR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