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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청소식

지(방)청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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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우리고장 출신 독립운동가
부서 보훈과
11월의 독립운동가 김인규(金麟圭) 선생 (1922. 8. 22~1996. 11. 4) 경남 양산(梁山) 하서 출신이다. 1940년 11월 23일 부산 공설운동장에서는 제2회 경남학도전력증강국방경기대회가 개최되었는데, 여기에 참가했던 부산 제2상업학교 및 동래중학교의 한국인 학생 1천여 명은 일본인 심판진의 편파적인 판정으로 일본인 학교가 우승을 차지한 것에 분노하여 당시 금지곡 이었던 「아리랑」, 「도라지」등의 노래를 고창하고 「조선독립만세」, 「일본 놈 죽여라」등의 구호를 위치면서 시가행진을 벌이는 한편, 경남지구 위수사령관(衛戍司令官)으로서 대회 심판장을 맡았던 일본군 대좌(大佐) 노다이(乃台兼治)의 관사를 습격 파괴하고 그를 구타하였다. 이에 일경과 헌병이 출동하여 200여 명의 학생이 피체되고 주동자로 지목된 11명이 구속 기소되었다. 이 항일시위는 일제의 군국파시즘적 탄압에 짓눌려 있던 민족혼을 일깨웠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었다. 당시 동래중학교 5학년생이던 김인규(金麟圭)도 피체되었으며, 1941년 8월 25일 대구 복심법원에서 징역 8월형이 확정되어 1년 3개월 여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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